요즘의 젊은이들은 쏟아져 나오는 전자 제품을 두고 '아, 지름신이 몰려온다.'고 말한다. 신상품을 질러대고 싶지만 돈이 없다며 '아, 슬프다, 부러워하면 지는 건데…'하며 탐욕을 억누른다. 아랍의 속담 '부러우면 지는 것'(The envious person is a sad person.)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부러움'에 대한 경계의 가르침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부러움'은 최악의 질병이며(Envy is worst of disease.), 영혼의 감옥(Envy is prison of spirit.), 굴욕의 근원(the source of humiliations.)이며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지 못하고(The envious person cannot be a leader.), 부러워만 하는 것은 영원히 구제 불능(The envious person is permanently sick.)이라고 가르친다. '부러워하는 사람은 적이 쓰러지면 행복해하고 적이 슬퍼하면 즐거워 한다.'( Envious person is happy when evil befalls (the envied) and sad over happiness.)며 '부러움 자체'를 죄악시한다. 성경에서도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한다.'(Love is patient; love is kind and envies no one.)며 envy를 경계하고 있다. '부러워하는 것은 결국 열등감을 인정하는 것'(He who envies admits his inferiority.)이라고 말과 '부러움은 보통 사람의 종교'(Envy is the religion of the mediocre.)라는 말도 의미는 같다. 한편 Envy가 부러움이라면 Jealousy는 질투다. '질투는 여자의 본능'(It's a woman's intuition that arouses her suspicion.)이라는 말과 '질투는 열등감의 표현'(Jealousy is the suspicion of one's own inferiority.)이라는 말도 참고할 만하다. '녹이 철을 잠식해 가듯 부러운 마음은 심신을 갉아먹는다.'(As iron is eaten away by rust, so the envious are consumed by their own passion.) '질투는 하는 사람은 귀가 얇아진다'(A jealous ear hears all things.)는 가르침도 있다.
그러나 '부러움은 결국 내 것이 아닌 것을 원하는 것'(Envy, after all, comes from wanting something that isn't yours.)이라면 여기에도 자신만의 처세술이 있다. 어떤 이는 '나는 셰익스피어를 우러러보지만 그의 결혼이 불행했고 지금은 그가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한다.'(I admire Shakespeare enormously. But since I can't be him, I'm glad that his marriage was unhappy and he's dead.)고 말한다. 결국 '나는 나이고 당신과 같을 수 없다.'(I am myself. Sorry I don't fit your standards.)는 말이 자신만의 위안이 될 수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