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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올림픽 티켓 따 놓고 정작 남 좋은 일 할 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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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 올림픽 티켓 따 놓고 정작 남 좋은 일 할 뻔했어요"

입력
2013.04.16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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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핑(Sweepingㆍ브러시로 빙판을 닦으라는 신호), 스위핑!"

경기도청의 스킵 김지선(26)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태극마크가 눈앞에 다가온 순간, 목에 핏대를 세웠다. 춘천 의암실내빙상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허리(Hurryㆍ속도를 더 내라는 신호) 허리." 리드 김은지(23)와 세컨 엄민지(22)는 주장 격인 스킵의 지시에 따라 힘차게 스위핑을 했다. 팔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도 브러시를 잡은 손은 멈추지 않았다.

약 20㎏의 스톤은 정직했다. 빙판을 닦은 흔적대로,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만큼 정확히 이동했다. 10-5, 5점 차 완벽한 승리. 우승이었다. 경기도청 선수들은 지난 15일 춘천의암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13 KB금융 한국 컬링선수권대회 겸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라이벌 경북체육회를 꺾고 국가대표 자격을 얻었다. 이로써 경기 내내 소리를 지르고 경기 뒤에는 원 없이 눈물을 쏟아낸 경기도청 선수들이 한국 컬링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2014 소치 올림픽)에 서는 주인공이 됐다.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들은 컬링을 포기할 뻔한 수많은 위기를 겪었다. 중학교 때까지 스피드 스케이팅 유망주로 이름을 날린 김지선. 그는 고등학교 때 중국에서 컬링을 배우며 눈칫밥을 먹었다. "왜 굳이 여기서 이러느냐. 한국으로 돌아가라"며 '스파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김지선을 눈 여겨 본 정영섭 경기도청 감독의 스카우트 제의가 없었다면 선수 생활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김은지는 학업을 그만뒀다. 성신여대 시절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고 결국 대학을 중퇴하고 실업팀에 입단했다. 서드 이슬비(25)는 유치원 선생으로 일 하다가 다시 스톤을 잡은 경우. 출산한지 얼마 안 된 신미성(35)은 팀의 정신적 지주다. 정 감독은 "우리는 외인구단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훈련비, 참가비 조차 없었다"며 "선수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올림픽에서 반드시 메달을 딸 것"이라고 했다.

사실 경기도청은 지난해 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들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2위 스웨덴을 꺾었고 러시아도 제압했다. 컬링 변방이 만든 기적이었다. 한국은 이 대회 성적으로 소치 올림픽에 출전할 티켓을 얻었다. 하지만 이후 국내대회에서 번번이 라이벌 경북체육회에 무릎을 꿇었다. 5번 맞붙어 모두 패배, 태극마크도 잃었다.

정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경북체육회만 만나면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며 "이번 대회를 앞두고 캐나다에서 한 달간 합숙 훈련을 했다. 아침, 점심, 저녁 훈련만 했다"고 말했다. 스킵 김지선은 "소치 올림픽 티켓을 우리가 땄는데, 정작 대회에 못 나갈까봐 마음이 아팠다"며 "속이 너무 시원하다"고 펑펑 울었다.

역사적인 올림픽 무대를 밟게 된 경기도청은 앞으로 해외 전지 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다. 정 감독은 "올림픽 경기장과 비슷한 빙질의 훈련장에서 연습을 해야 한다"며 "국제대회에도 참가해 많은 경험을 쌓겠다"고 말했다. 김지선은 "세계선수권을 통해 많은 걸 느꼈다. 큰 경기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제는 알 것 같다"며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팀을 믿고 팀원을 믿고 나를 믿는다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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