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이후 대한민국에는 정반대되는 선전의 결과물 두 개가 공존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선전과 정치적 선전의 결과물로 그 주인공은 젠틀맨이다. 싸이의 뮤직비디오와 국제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역설적인 젠틀맨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젠틀맨은 세계를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다. "금지 표지판 따윈 필요없다. 나이 그런 것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에게 신사의 모습을 기대하겠지만 왜 내가 그래야 하는지 아리까리한 내 모습 자꾸 해석하지 마라.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 아이들 마저 골탕 먹일 수 있는게 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때는 젠틀맨이 될 수도 있다. 당신들이 시건방진 나를 알랑가 몰라."
이 정도면 단순히 대중문화를 뛰어넘어 한반도에 존재하는 젠틀맨의 이중적 의미를 상상할 수 있다. 싸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젠틀맨은 현재 한반도 상황을 직간접으로 표현하는 인물과 묘하게 오버랩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 5만 여명이 운집한 모습, 아라리요를 외치고 전 세계에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잘 노는지 보여주자는 외침은 오히려 우리 방식의 궐기대회였다. 아니 그렇게라도 우리 스스로에게 선전해야 한다.
공연에서 대한민국을 강조했고 평화를 의미하는 흰색, 애국심의 감성코드는 '위 아 디 원'(We Are The One)이라는 곡으로 귀결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연계해 공연을 평가하는데 구태여 인색할 이유가 없다.
대화마저 단절된 대치 속에 싸이는 대한민국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젠틀맨이라는 신곡을 발표했고 반대로 국제사회는 북한의 지도자에게 젠틀맨이 되라고 요청하고 있지 않나.
북핵 취재를 위해 방한한 외신기자들이 젠틀맨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은 2013년 한반도의 극단적 단면을 보여줬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조사한 세계의 영향력있는 100인에 가수 싸이와 북한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각각 7위와 6위에 올랐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심지어 두 사람 외모의 유사함까지 외신에서 다루어 졌다.
두 인물 그리고 젠틀맨은 모두 잘 기획된 선전의 결과물이다. 선전은 기본적으로 단순, 반복, 그리고 특정한 이미지 창출과 감성의 자극이라는 요소가 유기적으로 조합될 때 대중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한다. 젠틀맨도 멜로디, 추상적 어휘로 단순화된 가사의 반복, 성적 요소를 강조한 감성적 자극, 싸이라는 강력한 이미지가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대중을 흥분시키고 열광케 하는 것, 특정한 구호를 외치도록 하고 응답을 유도해 내는 공연은 대표적인 선전의 예다. 동일한 시기 우리는 또 하나의 선전 즉 북한의 협박과 공포감 조성에 노출되어 있다. 전통적으로 선전효과를 논할 때 협박과 공포는 단기적 효과에 유효하다. 그래서인지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는 심심찮게 전쟁의 공포를 자극하는 괴담 형태의 유언비어가 횡횡한다. 겉으로 보기에 여유있어 보이는 국민들의 모습과 달리 끊임없는 불안감도 내재되어 있다. 남북한의 문제를 핵으로 단순화 시키고 자신들의 주장을 반복하고 그들이 추종하는 지도자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선전의 연장선상이다. 이 과정에서 협박과 전쟁의 공포라는 감정적 자극은 계속되고 있다. 선전의 주요 목적은 심리적인 구속과 압박이다. 이것이 먹혀들면 행동할 수 있는 빌미가 제공된다. 혼란, 자조, 공황의 단골 손님이 바로 선전이다. 비정상에 동조하게 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들며 직관적으로는 두려움과 공포 등 감성적인 것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막아내는 것도 바로 선전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젠틀맨공연 속에 기획사가 심어 놓은 평화와 애국심의 코드에 나름 의미를 부여해도 무방하다. 우리에게는 긍정적이고 필요한 선전이며 그것이 대한민국의 우성 인자이고 소프트 파워다. 좀 억측스런 해석이다 싶어도 지금은 우리 스스로에게 그렇게 선전을 하자. 현 정세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우리 사회 내부 소통으로 외부의 선전을 이겨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를 향한 대중문화 속에서 조차 확고하게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고.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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