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는 한국관 대표작가가 없다. 스타 건축가가 아니라 한국 건축의 기본요소를 소개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국관 커미셔너의 큐레이팅이 전시의 주인공이 되는 셈. 한국관 커미셔너로 선정된 조민석씨는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작가보다 기획 위주 전시를 선보일 것"이라고 시종 강조하며 "기본으로 돌아가 지난 100년간 한국 건축의 진화를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타 작가 없는 한국관 전시가 생소하지만, 이는 10여년 전부터 세계 미술계에 불기 시작한 '기획 위주' 전시회가 국내에도 영향을 미친 사례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작가라는 게 관람객들의 통념이지만, 이제 큐레이팅은 당당히 '아트'의 주역으로 올라섰다. 큐레이터가 자신이 정한 주제에 따라 고르고 엮은 작품들로 구성한 전시가 이어지는가 하면, 아예 큐레이터의 발주로 작가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전시까지 열릴 예정이다. 단순히 젊은 작가 몇 명을 모으거나, 지역ㆍ역사적 행사에 맞춰 전시하는 기획전과 달리 유명 큐레이터들의 기획 자체가 핵심인 전시들이다.
6월 23일까지 삼청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더 완벽한 날: 무담 룩셈부르크 컬렉션'는 룩셈부르크 미술관 '무담'의 소장전. 아트선재가 13일 연 기자간담회에 초청된 전시의 주인공들은 룩셈부르크 대표 작가가 아니라 큐레이터였다. 임혜진 아트선재 학예사는 "3년 전부터 무담과 아트선재 소속 큐레이터들이 공동 기획해 작품을 고르고 배치도 논의했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되, 룩셈부르크가 가진 유토피아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18일부터 5월 31일까지 통의동 갤러리 시몬에서 열리는 '디테일전' 역시 "비평가 강수미의 기획"으로 마케팅하고 있다. 강수미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는 국내외 미술계 흐름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비평하고, 자신의 비평을 시각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전시회를 기획해왔다. 2009년에는 비평가 임근준, 반이정씨 등과 함께 '비평의 지평'전을 열기도 했다. 강 교수는 "2008년 구글아트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해외 유명작품들을 100만 화소 이상으로 확대해 볼 수 있게 됐다. 현대미술에서 선보이는 세밀함, 정교함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이런 문제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 7명을 섭외해 각 작가에 맞는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19일부터 5월 26일까지 문화역서울에서 열리는 '드림 소사이어티'는 서진석 대안공안 루프 대표가 공공미술을 주제로 아예 참여 작가들에게 새 작품을 의뢰해 연 전시다. 서 대표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화두가 된 미술의 공공성을 일상생활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기획자 위주의 전시가 선보인 것은 1990년대 중ㆍ후반 세계적으로 비엔날레가 붐을 이루면서 시작됐지만 작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관람자와 소통시키는 단계까지 이른 해외 미술계와 달리, 국내 미술계에서는 아직 큐레이터의 기획 능력보다 유명작가의 섭외가 중심이다. 강수미 교수는 "아직 스타위주의 미술계 풍토에서, 전시 기획이 변별성을 가진 의미로 자리잡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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