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저가매물이 팔린 뒤 나타나는 일종의 착시일 따름이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기대감과 4ㆍ1 부동산대책에 힘입어 집값 바닥론이 세를 얻고 있다. 실제 2, 3월 서울 강남3구를 시작으로 목동, 경기 과천ㆍ분당ㆍ일산 등지에선 급매물이 속속 팔려나갔고, 덩달아 호가(집주인이 부르는 가격)가 1,000만~2,000만원씩 뛰면서 문의전화도 잇따랐다. 거래 실종이라 불리던 지난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집값 상승과 거래 증가를 반겨야 할 현장의 공인중개사들은 오히려 "최근 호가 상승과 맞물린 바닥론에 거품이 끼었다"고 고개를 젓는다. 부동산시장에 조금씩 온기가 도는 건 맞지만 반등을 바랄 정도의 바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호가가 오르고 문의가 늘었다고 마냥 좋아할 순 없다"고 했다. 고개 드는 바닥론의 이면에 숨은 함정을 잘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숨어있는 첫 번째 함정은 미끼상품이다. 불황에 내몰린 공인중개업체가 부동산정보사이트에 일부러 시세보다 싸게 올리는 매물이 호가를 끌어올려 가격을 왜곡시킨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집주인이 A부동산에 아파트를 5억원에 내놓으면, A부동산은 매매가격을 4억9,000만원으로 낮춰 사이트에 띄우는 식이다. 수요자는 사이트에 표시된 가격을 보고 찾아오지만 실제 그런 매물은 없는 셈이다. 더구나 상담 과정에서 집주인의 원래 요구대로 1,000만원을 높여 부르면 가격이 오른 것처럼 보이게 된다. 분당 서현동의 공인중개사 박모(57)씨는 "일부 업자들이 수요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미끼상품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고 귀띔했다.
일종의 승수 효과 역시 집값을 왜곡시킨다. 집을 구하는 B가 같은 지역의 부동산 서너 곳만 방문해도 집주인들은 최소 5곳, 심지어 10곳이 넘는 부동산에서 "집을 팔라"는 전화를 받게 된다. 다급한 공인중개사들이 적당한 매물을 찾느라 동료 공인중개사 등 인맥과 정보를 총동원해 물건을 수소문하는 과정에서 손님 1명이 10명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사정을 알리 없는 집주인들은 손님이 몰려온다고 착각해 호가를 올린다. 과천 S부동산 이모(54)씨는 "결국 매수가격과 매도가격의 차이만 벌어져 거래만 힘들어진다"고 했다.
한 마디로 미끼상품과 승수 효과가 최근 호가를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어 아직 바닥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강남구 개포동의 공인중개사 정모(64)씨는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부동산 호가는 관례처럼 반짝 상승했다"며 "올 들어 호가가 너무 올라 3월 중순부터 거래가 중단됐고, 이후 호가도 1,000만~1,500만원씩 떨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호가가 오른 물건이 팔리고 새로운 시세가 형성되려면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는 게 현장의 분석이다. 일산 신도시의 S부동산 심모(51)씨는 "수요자가 오른 호가에 집을 사고, 거래량도 늘어야 바닥을 친 것"이라며 "바닥은 지나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물경기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집값 바닥론은 2009, 2011년에도 있었던 만큼 섣불리 바닥을 거론하는 건 위험하다"며 "실물경기가 회복돼 수요자들의 호주머니가 두둑해져야 정부 대책도 먹히고 부동산경기도 근본적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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