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최근 현대모비스와 SK C&C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이사 재선임을 반대했다.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에서다. 올 들어 국민연금은 신격호(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빈(롯데그룹 회장),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조양호(한진그룹 회장), 이재현(CJ그룹 회장),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 등 주요 재벌 총수의 이사 재선임안에 대해서도 "기업가치 훼손"등의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지난해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을 하이닉스 이사로 선임한 주총에서 '중립'의견을 표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국민연금이 새 정부의 국정 방향에 맞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풀이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15일 공시한 의결권 행사내역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 들어(3월말 현재) 총 12차례에 걸쳐 재벌 총수들의 이사 재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특히 현대모비스와 SK C&C 정기 주총에선 정몽구 회장과 최태원 회장의 이사 재선임안에 대해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며 반대했다. 나머지 10건도 "과도하게 많은 계열사 이사직을 겸직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부터 경제민주화 흐름에 발맞춰 주주로서의 목소리를 강화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새 정부 들어 의결권 강화에 더욱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 국민연금은 올 들어 3월 말까지 총 451회의 주주총회에 참석해 전체의안(2,084건)의 12.5%(260건)에 대해 반대표를 행사했다. 상법 개정 문제로 반대 비율이 높았던 작년(18.4%)보다는 5.9%포인트 낮은 비율이지만, ▦2008년 5.4% ▦2009년 6.6% ▦2010년 8.1% ▦2011년 7.0%과 비교해 크게 높아진 수준이다. 다만, 국민연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벌 총수들의 이사 재선임안이 부결로 이어지진 않았다. 지난해에도 국민연금의 반대로 해당 안건이 부결로 이어진 건 한섬 등 3건에 불과했다.
앞으로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기금의 국내 주식투자 확대를 제한해 온 '10%룰'을 완화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이달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마련되면 국민연금의 주식투자가 확대돼 대주주 교체 등 기업 지배구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계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할 경우 기업들의 자율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의결권 강화를 통해 사실상 기업경영에 참여한다면 논란이 커질 수 있다"며 "국민연금의 독립성 확보와 함께 순수한 투자목적에만 '10%룰'이 완화되도록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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