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를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국회와 정부가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에 본격적으로 착수했기 때문이다. 재계가 일부 규제 조치가 과도하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있는데,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고 가세해 파장이 커지는 양상이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대기업 집단의 일감 몰아주기. 15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대기업 총수일가가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는 정상적인 거래보다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의 거래만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했으나, 개정안은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규제대상 범위를 넓혔다. 또 총수일가 지분율이 30%를 넘는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을 때는 부당 내부거래에 오너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하는 규정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재계는 물론 일부 여권 지도부도 기업인의 의욕을 꺾을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향후 기업의 모든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며 "조만간 개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부당지원 행위에 따른 시장질서 교란에 대한 입증 책임을 지금처럼 공정당국이 아니라 해당 기업에 부여한 점도 재계의 우려를 사는 대목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위법 혐의를 받는 당사자에게 '혐의 없음'을 입증하라는 것은 법률적으로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사 간 거래 중에서 총수일가에게 부당한 이득이 돌아가는 내부거래만 금지하는 것인데 재계가 사실을 과장하고 있다"며 "더욱이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하위법령에 규정하거나 국회 논의과정에서 보완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여야 6인 협의체에서 정한 '대선 공통공약 입법의제'에도 재벌을 겨냥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이 대거 포함됐다. 재벌총수의 횡령 등 300억원 이상의 불법적 이익에 대해 최고 1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고 대통령 사면권도 제한하는 내용의 특경가법 및 사면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재벌총수가 경제범죄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기고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부조리한 현실을 고치기 위한 것이다.
앞서 10일에는 대기업의 하청업체 기술유용 행위와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가하는 하도급법 개정안과 등기임원의 5억원 이상 개별 연봉을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정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 밖에 프랜차이즈 가맹점에 대한 부당행위 제재, 통행세 규제, 금산분리를 강화하기 위한 은행법ㆍ금융지주회사법 등의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재계와 여권 일각에선 "당면한 경제위기를 넘기려면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며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박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상당수 법안의 원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온다.
하지만 학계와 시민단체에선 재계 등의 우려가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국장은 "큰 틀에서 보면 최근 논의되는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이 대부분 박근혜 정부의 공약에 포함된 내용인데도, 재계가 일부 법안을 확대 해석해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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