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인 LG실트론과 포스코특수강은 올해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통해 각각2,000억원과 1,2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계획됐던 기업공개(IPO)를 중단하면서 발생한 자금수요를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이들 기업은 설비투자 등을 위해 IPO로 투자를 받으려 했으나 증시침체와 업황부진 등으로 공모가치를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신용등급이 'AA' 이상이라 회사채 등의 발행은 가능했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 불황과 증시침체가 겹치면서 올해 IPO를 계획했던 기업들이 모두 눈치만 보고 있는 형편"이라며 "회사채 발행도 지난해 웅진사태 이후 꽉 막혀 중소기업은 자금조달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IPO 시장이 올해도 여전히 '동면'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지난해보다도 40%가까이 공모자금이 줄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IPO 육성을 중소기업 살리기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어 IPO시장에도 봄이 찾아올지 주목된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 상장을 통해 공모한 자금은 1,733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동기(2,833억원보다)보다 38.8% 줄어든 규모다. 특히 코스피 시장에서는 상장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코스닥시장도 공모가가 500억원 이상 대어는 한 건도 없었다. 우리이앤엘이 공모가 441억원으로 가장 높았을 뿐이다. 2008년 이후 최악의 한 해였다는 지난해(1조73억원)에도 휴비스(2,001억원), CJ헬로비전(2,932억원) 등 2,000억원 이상 공모기업이 있었다. 이재만 동양증권 연구원은 "지수 상승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IPO시장도 별볼일 없는 시장으로 평가 받고 있다"며 "대어급 공모주들이 상장을 줄줄이 연기하거나 철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IPO시장과 달리 해외시장은 활황이다. 1분기에만 IPO를 통한 자금 조달액이 230억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동기(150억달러) 대비 53% 성장했다. 뉴욕 다우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해외증시가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IPO 시장의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어급 상장기업으로 평가 받는 현대로템이 11일 예비상장심사청구서를 거래소에 제출하며 상장절차에 돌입했지만 추가로 상장에 나설 우량 종목이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실제 공모가 1조원 이상으로 예상된 SK루브리컨츠는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40% 이상 축소되면서 올해 IPO 계획이 미뤄졌고,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오일뱅크, 포스코특수강 등도 시장침체 등으로 상장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IPO의 부진엔 일시적 증시침체만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투자자와 금융투자업계가 함께 유망한 신생기업에 자금을 수혈한 뒤 증권시장 상장을 거쳐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 있으나 우리는 이런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IPO시장이 살아나기 위해선 경기상황과 함께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새 정부는 코넥스(KONEXㆍ중소기업 전용 주식시장) 신설, 대형투자은행 육성 등 중소기업 투자육성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IPO 증가는 기업성장의 선순환 효과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며 "공시비용, 사외이사ㆍ감사 선임 의무 등 상장기업이 비상장기업에 비해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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