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이 아닌 별도의 공사를 설립해 400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을 맡기자는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전문가들에게 맡겨 독립성과 수익성을 추구하자는 주장과,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는 15일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전담할 '국민연금 기금운용공사' 설립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에 들어갔다. 2008년 정부도 같은 비슷한 법안을 발의했지만 가입자 대표가 배제되고 재정당국의 통제를 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현재 기금운용 계획을 심의ㆍ의결하는 국민연금기금운영위원회의 구성원 7명을 전원 금융ㆍ투자 전문가들로 교체하고 이 위원회를 국민연금공단이 아닌 기금운용공사에 두자는 것이다. 다만 대표성 논란을 고려해 사용자ㆍ근로자ㆍ지역가입자ㆍ공익위원이 이들을 추천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는 복지부 소속 비상근 회의기구로 위원 21명 가운데 가입자(사용자ㆍ근로자 및 지역가입자) 대표가 12명이다. 이 위원회에서 자산배분, 위탁운영계획 등 운용지침을 결정하면 공단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기금을 굴린다.
법안을 발의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위원회에는 전문가들이 배제돼 있고, 기금수익률이 낮아져도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며 "독립적인 민간전문가들이 기금운용을 결정하고 수익률이 낮거나 손실을 보면 책임을 지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민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기금에 눈독을 들이는 정치권이나 관료들로부터 기금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문형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1988년 국민연금이 출범된 뒤 정부는 1998년까지 국민연금 적립금을 다른 정부사업에 쓸 수 있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 의무적으로 맡기도록 했다가 외환위기 이후에야 이를 폐지했다"며 "올초에도 국민연금기금으로 기초연금 재원을 충당하자는 방안이 나오는 등 기금에 손대려는 외압은 여전할 것"이라고 개정안에 찬성을 표시했다.
반면 천문학적인 액수의 기금 운용을 민간전문가에 맡길 수 없다는 반론도 거세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형식적으로는 전문성의 부족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수익성을 높이는 데만 몰두하겠다는 것이 법안을 추진하는 쪽의 생각"이라며 "민간금융전문가들에게 맡기면 정치적으로 독립될지 모르지만, 기금의 통제는 시장에 맡겨질 것"이라고 반대입장을 표시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공공기금의 경우 공공성과 안정성의 가치를 수익성보다 높이 둬야 한다"며 "기금 운용결정에 이해관계자들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것이 기금 투자실패로 인한 정치적ㆍ사회적 혼란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 연금재정과 관계자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 강화, 독립성 강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공사설립에 대한 정부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야당은 기금운영위원회의 전문성 강화는 찬성하지만 공사설립에는 부정적인 입장으로, 치열한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