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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시험대 오른 인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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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시험대 오른 인내심

입력
2013.04.1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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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가 지지 않았는데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매화 지면 살구꽃 피고, 좀 뜸 들이다 벚꽃 세상 되는 게 꽃 모양 비슷한 이들 나무의 개화 순서다. 그런데 꽃샘추위가 오락가락하면서 뒤죽박죽이다. 우리 아파트 응달 진 곳의 매화는 아직도 꽃봉오리 상태로 게으름을 피우는 중이다. 어제 또 다시 기온이 뚝 떨어졌으니 당분간 봄 꽃들의 시련은 계속될 것 같다. 혹독했던 겨울의 뒷자락이 길어지면서 봄의 발걸음이 매우 더디다.

한반도 정세의 봄도 요즘 날씨를 닮아 더디 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류길재 통일부장관의 대북 대화 제의에 맞춰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한중일 해빙 여행이 훈풍을 몰고 와 한반도에 대화의 꽃이 피는가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웬걸, 북쪽에서 대화를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심하다.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에 북 조평통 대변인은 "내외 여론을 오도하며 대결적 정체를 가리우기 위한 교활한 술책"이라며 차가운 북풍을 내쏘았다.

한반도에 진짜 대화의 봄이 오기까지 몇 차례나 더 꽃샘추위가 있을까. 15일 고 김일성 주석 101번째 생일인 태양절에 이어 25일 인민군 창건일까지는 대내외적으로 '겨울 대목 장사'를 위해 찬바람이 필요할 수 있다. 이달 말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 종료 시점도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의 한 구청장이 최근 출간한 자서전 제목처럼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얼어붙었던 한반도 정세에도 결국 봄이 오고 말 것이다.

대자연의 운행 법칙에 따른 계절 순환과는 달리 남북관계의 봄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불신과 증오의 냉기를 밀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대남 위협을 계속하는 북한을 향해 "항상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고 거듭 밝힌 것이나, 개성공단 문제를 대화로 풀자는 류길재 장관의 대북성명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미국이 북한을 자극할 대륙간탄도탄(ICBM)실험과 일부 군사훈련을 연기한 것도 같은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결국 진정성의 문제다. 북한은 일련의 한미 대화 제스처에 대해 간을 보는 중이다. 북 조평통 대변인이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다면서도 "앞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가 마는가 하는 것은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한 데서 잘 드러난다. 북한은 박 대통령이 내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진정성을 여러 각도로 시험해 보는 중인 것 같다.

과거 이명박 정부도 북한에 수 차례 대화 제의를 하고 정상회담까지 추진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김정일 체제를 인정한다는 것인지 부정한다는 것인지 불분명했고, 앞에선 대화를 하자면서 뒤로는 체제붕괴를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혼란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는 달라 보인다. 이명박 정부는 방임했던 북한인권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풍선 띄우기를 제지한 것만 봐도 그렇다.

대체로 방향을 잘 잡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한반도에 대화의 봄을 꽃피우는 발판으로 자리잡으려면 정교한 정책 못지 않게 인내심이 필요하다. 현명한 부모는 자식이 엇나갈 때 속이 문드러져도 참고 기다린다. 민주통합당 심재권 의원이 정부가 공식적으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호칭을 쓸 때 예를 갖추자고 한 것도 그런 심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말로 북한에 도발 자제와 대화를 촉구하면서 "김정은 위원장님"이라고 정중한 경어를 사용했다. 반 총장의 속마음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청와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이 조평통 대변인을 통해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에 대해 "참으로 유감"이라며 "이는 박 대통령의 뜻"이라고 했다. 이 강한 유감 표명이 박 대통령의 인내심이 바닥에 다다르고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내심 없이 진정성을 확인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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