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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잠입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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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잠입취재

입력
2013.04.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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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한중수교 직후 백두산에서 동해에 이르는 두만강 2,000리 길을 따라간 적이 있었다. 당시로선 해방 이후 반세기 동안 잊혀진 망각의 길을 더듬어가는 여정이었다. 중국 땅에서 본 북한은 국경 너머랄 것도 없는 그야말로 지척의 이웃이었다. 상류에선 바짓단 한번만 접으면 옷 적시지 않고 건널 정도였다. 바다처럼 넓어지는 하류만 아니면 어디든 물장구 몇 번으로 헤엄쳐 건널만했다. 아무렇지 않게 북한주민들을 만나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

■ 슬그머니 북한 땅에 직접 들어가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해방 후 남한 기자의 첫 잠입취재라면 대단한 특종일 것이었다. 북한을 수시로 왕래하는 현지 조선족에게 필요한 위조서류와 동행을 제안했다. 여정 내내 번거로운 부탁도 마다 않던 그가 이번만은 펄쩍 뛰었다. "선생처럼 큰 체격과 흰 피부색은 북한 땅에 없습니다. 국경을 넘는 순간 몇 백m 앞에서도 거기 사람이 아닌걸 누구나 알아챌 겁니다."(나는 보통 체격에 피부가 어두운 편인데도)

■ 기자들에게 잠입취재는 할 수만 있다면 그처럼 매력적인 것도 없다. 모든 포장과 위선을 걷어낸, 생생한 날것의 실상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 같은 유혹을 느낀 두 미국 여기자가 두만강을 넘었다가 북한당국에 바로 체포돼 5개월 만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중재로 간신히 풀려난 적도 있다. 역사상 최고의 종군여기자로 꼽히는 마거릿 히긴스도 6ㆍ25전쟁 개전 직후 함락된 서울에 잠입한 취재기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 최근 영국 런던정경대 학생들의 평양방문 때 BBC 기자가 대학원생으로 위장 동행해 잠입취재 한 사실로 논란이 한창이다. 학교 측은 발각됐으면 모두 억류됐을 뻔했다고 분노하고, 기자는 학생들이 취재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반박한다. 결국 공익 차원의 취재행위가 어느 정도까지 용인될 수 있느냐는, 언론의 취재윤리에 관한 논쟁이다. 그러나 정작 한숨 나오는 일은 21세기 지금 세상에도 목숨 걸고 잠입해야만 들여다볼 수 있는 나라가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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