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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피해 유무 상관없이 불법엔 엄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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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피해 유무 상관없이 불법엔 엄벌"

입력
2013.04.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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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벌 총수들에 대한 잇단 엄격한 법 집행의 신호탄 격이었던 김승연 한화 회장에 대한 실형 판결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형량은 다소 줄었지만, 법원은 집행유예가 가능한 3년형을 선고하면서도 김 회장의 징역형을 유지했고 투명한 기업 경영의 중요성을 이례적으로 강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윤성원)는 김 회장의 형량을 정하기 위해 우선 항소 요지부터 차분히 살펴봤다. 김 회장 측이 1심부터 가장 강조한 부분은 "다소 부당한 방법이 사용됐으나 경영상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고 구조조정의 결과도 좋았다"는 점이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김 회장이 한화 계열사를 동원해 부실한 위장계열사인 한유통과 웰롭 등에 연결자금을 지원한 부분 등은 결과적으로 별다른 문제 없이 피해 계열사들의 모든 책임이 소멸해 아무런 손해도 발생하지 않은 것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과정의 위법성 및 배임행위 산출액과 별개로, 결과가 좋았다는 부분에 대해선 일부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독일 철학자 칸트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피해 유무와 상관없이 김 회장의 행위는 엄벌돼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비록 (현 시점에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김 회장 불법행위 당시의) 위험성은 수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였다"며 "특히 김 회장은 피해 계열사의 개별 이익을 위한 합리적 고려와 투명한 절차를 무시하고 부동산이나 기업의 가치를 임의로 조작하는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위법을 소멸시킬 수는 없다'는 형법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배임 혐의 적용을 무리하게 확장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내 논의와 관련, 김 회장 사건은 여기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최근 기업의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경영판단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배임죄 적용을 신중히 하고 있지만, 김 회장의 경우 적법한 절차와 수단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사안이 전혀 다르다"고 판단했다. 개별적인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꼼꼼히 혐의 유무를 따지더라도 배임죄 논란 때문에 사안 자체에 소극적으로 접근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주식회사 제도로 운영되는 대기업의 오너일수록 기업 경영을 더욱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김 회장의 계열사 부당 지원 혐의는 주식회사 법제도의 본질적인 가치와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각각 법인격을 가진 주식회사 형태의 많은 계열사를 운영하는 대기업 경영자가 주식회사 법을 지키지 않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침대가 달린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들어선 김 회장은 선고 내내 재판부의 이 같은 지적을 눈을 감고 경청하는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무성하게 자란 수염 사이로 입을 앙다물거나, 힘없는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김 회장은 선고가 끝나자 변호인에게 몇 가지 조용히 질문하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법정에 찾아온 지인과 직원들이 "회장님 힘내세요"라고 응원했지만 김 회장은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지난 1월 구속집행이 정지된 김 회장은 상고 여부와 상관없이 5월 7일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판결문을 받아본 뒤 상고 여부와 향후 계획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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