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신용카드 사용한도가 초과됐다고 합니다."
지난 3일 오후 서울의 한 유명 면세점 시계매장에서 중국인 퐁모(50)씨는 태연하게 지갑에서 다른 신용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매장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또 다시 승인이 거부됐다는 말을 전했지만 퐁씨는 주눅들지 않았다. 500만원 상당의 시계를 결제하면서 계속 승인이 거부되자 그가 꺼낸 신용카드만 10여장. 면세점 매장에서 같은 상품을 두고 연이어 승인거부가 나는 것을 수상하게 여긴 국내 카드사가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 중국인의 위조카드 사용 행각은 덜미가 잡혔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문제의 중국인이 지난 2월 제주에서 위조 신용카드 45장을 이용해 무려 3억9,000만원 어치를 구입한 후 중국으로 반출했던 피의자와 동일인임을 확인했다. 검거 당시 퐁씨는 서울로 재입국한 지 3일 만에 80장의 위조카드로 명품가방, 고급시계, 태블릿 PC 등 2억2,000여 만원 상당의 물품을 구입한 상태였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해외 신용카드를 중국에서 위조한 뒤 국내에서 사용한 혐의(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로 중국인 퐁모(50)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총책 라모(53)씨 등 3명을 지명수배했다고 14일 밝혔다.
퐁씨는 총책인 라씨로부터 "IC칩 위주로 결제해야 하는 중국보다 범행이 쉬운 만큼 한국으로 가서 물건을 구입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우리나라가 국제 위조 신용카드 범죄의 주 타깃이 되고 있다고 했다. 보안이 허술한 신용카드결제 관행과 시스템 탓이다.
지난 6일에는 지인으로부터 국제우편을 통해 받은 위조 해외 신용카드 55장을 유흥업소에서 사용한 혐의로 엄모(30)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미 영주권자인 엄씨는 공범들과 지난해 3월부터 4개월간 서울 강남의 나이트 클럽 등에서 무려 8,700만원 상당을 유흥비로 사용하고 위조카드로 결제 했지만 당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퐁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카드 결제 후 전표에 서명하는 것조차 귀찮게 여기는 우리나라에서는 결제 과정에서 위조 및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사실상 없다.
경찰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마그네틱 신용카드는 IC 칩 카드와 달리 위조가 쉬워 외국인 범죄자들이 한국을 노린다"며 "IC칩 카드 결제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2015년 1월부터 마그네틱 카드를 이용한 거래를 제한해 시중의 카드 단말기를 IC칩 카드 전용으로 전면 교체한다는 방침이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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