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산업의 핵심은 장기 리스크 관리다. 더욱이 저금리 시대에 자산운영을 잘못했다간 건전성에 치명타를 입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국내 주요 보험사의 최고경영자(CEO) 10명 중 4명은 보험 경력이 일천한 비전문가로 조사됐다. 보험산업이 갈수록 커지는데도 문외한 CEO가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오랜 기간 금융권 전반에 보험의 중요성과 전문성을 무시하는 문화가 퍼져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보험업계의 일대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14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국내 26개 주요 보험사 중 보험 경력이 거의 없는 비전문가 출신 CEO가 경영을 맡은 곳이 전체의 40%(10개)에 육박했다. 15개 생명보험사 중에는 비전문가 CEO가 7명이나 됐고, 11개 손해보험사 중에도 비전문가 CEO는 3명이었다. 반면 외국계 보험사는 대부분 보험 전문가 출신 CEO가 경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전문가 CEO가 많은 곳은 금융지주와 대기업그룹 계열사였다. 6대 금융지주사의 생보 계열사 가운데 보험 전문가 CEO는 3명에 그쳤다. 나머지는 모두 대부분 직장생활을 은행에서 보낸 은행 임원 출신이었다. 사실상 지주 형태를 갖춘 기업은행의 자회사 IBK연금보험까지 합칠 경우,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의 비전문가 경영 비중은 60%에 육박한다. 은행 중심의 현 금융지주 체제에서 소규모 자회사들이 은행 임원들의 '순환 보직용'으로 이용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삼성, 현대, 롯데 등 재벌 계열 보험사에도 그룹 주력사 출신의 보험 문외한 CEO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단순히 보험 경력을 기준으로 CEO의 적절성을 따질 순 없지만, 장기 리스크 관리가 핵심인 보험사 경영에 은행ㆍ증권ㆍ제조업 등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가 올 경우, 자칫 중대한 경영상 오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직후 문을 닫은 10여 개 보험사의 상당수는 제조업체 계열사였다"며 "설계ㆍ판매를 조금만 잘못 해도 미래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보험계약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자칫 CEO가 단기실적 향상에만 매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저축성보험 실적 경쟁이나 실손의료ㆍ연금보험 등의 절판 마케팅은 이 같은 근시안적 경영 판단에 기인한다는 얘기다.
금융당국도 이런 우려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민간회사 인사에 개입할 권한은 없지만 CEO의 전문성은 보험사 건전성과도 관련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취임 일성으로 보험민원 감축 필요성을 제기한 최수현 금감원장은 "아직 금융권에는 은행, 증권 등에 비해 보험사 경영을 쉽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보험사 경영에 대한 업계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보험사를 계열사로 둔 대기업 총수들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금융지주 안에도 평소 보험 전문가를 많이 육성해야 한다"면서 "보험사는 CEO 성과 평가에서도 단기실적 대신 최소 4,5년 이후에 성과를 종합 평가하는 시스템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비전문가 CEO는 전문가들이 생각 못하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낼 순기능도 있지만 아무래도 보험산업을 잘 몰라 경영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여전히 다수 보험사에서 전문성보다는 충성도를 기준으로 CEO를 선택하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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