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는 불황을 모르는 시장. 게다가 '토종'천국이다. 해외 SPA 브랜드가 주름 잡는 패션업계나 나이키 아디다스 리복 등 글로벌 브랜드가 휩쓰는 스포츠의류와 달리, 아웃도어 시장을 주름잡는 강자들은 노스페이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산 브랜드들이다.
더 특이한 건 토종브랜드들의 '뿌리'다. 일부 대기업 계열(코오롱스포츠 LS네트웍스)도 있지만, 상당수는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 등에서 출발해 성공신화를 썼다. 업계 관계자는 "1960년대부터 등산용품점은 주로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에 밀집해 있었다. 그곳에서 시작한 상인출신들이 지금의 아웃도어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야크의 창업주인 강태선(64) 회장은 1968년 제주에서 상경, 남대문시장 옷 도매상에서 장사를 배웠다. 5년 뒤 그는 동대문 인근인 청계 5가에 '동진산악'이라는 조그만 등산용품 판매점을 열며 직접 사업을 시작했다. 이 동대문 등산용품점은 40년이 지난 지금 6,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국내 '빅4' 아웃도어 업체로 성장했다.
이중 1,000억원 가량은 해외 매출로 중국은 물론 유럽에도 진출하고 있다. 그는 4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7년 뒤 국내외 매출 4조원, 세계 1위 브랜드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등산화 제조업체로 시작해 아웃도어 3위 업체로 성장한 K2는 고 정동남 사장이 1972년 종로에서 미싱 3대, 기술자 몇 명을 데리고 시작한 제화공장에서 출발했다. 고 정 사장이 2002년 등반 도중 실족사로 갑작스럽게 타계한 후, 아들인 정영훈 대표가 경영권을 넘겨 받아 의류 등 등반용품 전반으로 제품군을 확대했으며 현재 노스페이스와 코오롱에 이어 3위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지난해 공장해외 이전과 함께 정리해고 추진계획을 밝히면서 노사갈등이 커졌고, 현재 블랙야크에 거센 추격을 당하고 있다.
이탈리아 브랜드 '네파'를 인수, 토종 브랜드로 급성장시킨 김형섭 대표는 독립운동가였던 조부 고 김항복 창업주가 서울 을지로 초동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창업한 '평안섬유'를 3대째 경영하고 있다. '독립문 메리야쓰'로 유명했던 평안섬유는 한때 법정관리까지 갔지만 김형섭 대표가 맡은 후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김 대표는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연예인을 모델로 쓰는 등 과감한 마케팅을 펼치며 국내 5위 아웃도어 업체로 순식간에 성장했다. 최근에는 네파 지분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했으나 대표이사로서 경영은 계속 하고 있다.
패션그룹 형지의 최병오 대표는 동대문 의류상인 출신으로 '크로커다일 레이디'라는 중년 여성 대상 브랜드가 히트하면서 급성장한 기업인이다. 최근 패션업계가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지난해 '노스케이프'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아웃도어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사실 국내 등산용품산업은 유독 굴곡이 많았다. 비상계엄과 통행금지가 있었던 시절엔 등산 자체가 외면당했고, 1990년대 초 산에서 취사가 금지되면서 수많은 등산용품 회사들이 도산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과정을 겪었기 토종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해외 브랜드와 대결에서도 이길 만큼 생명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웃도어 토종브랜드들이 커진 외형에도 불구, 경영마인드는 '전통시장'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자수성가한 오너 특유의 고지식함이 성장의 원동력도 됐지만, 사회적 소통이나 글로벌화엔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는 "오너에게 100억원을 배당하면서 기부금은 연 100만원밖에 안 되는 기업도 있다"면서 "규모는 커졌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은 아직 미진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