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내셔널리그에는 프로축구 K리그 1,2부에 들지 못한 실업팀 10개가 모여 있다. 연고지 주민들조차 내셔널리그라는 용어 자체를 아는 이가 드물고, 또 알더라도 알아듣기 쉽게'3부 리그'라고 얕잡아 일컫는 팀들이다. 선수 기량이나 팀 경기력은 K리그에 못 미친다. 선수ㆍ감독의 연봉도 처우도 그렇다. 시즌 주말마다 펼치는 전 경기 관람은 무료지만 관중석은 늘 썰렁하다. 관중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가 더 많을 때도 있다. 그들은 K리그 팀들처럼 '관중이 적어 흥이 안 난다'는 투정조차 안 하거나 못한다.
그런 내셔널리그 팀들에게도 서포터스는 있다. 숫자는 적지만 열정은 뜨겁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홈경기든 원정경기든, 열 일 제쳐두고 달려간다. 경기 몰입도와 근성은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 못지않다. 워낙 소수다 보니 선수들과의 관계도 여느 K리그 팀 서포터스들이 넘볼 수 없을 만큼 친밀하다. 어떨 땐 그라운드의 선수들이 서포터스를 응원하려고 더 분발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래서 내셔널리그는 외롭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왜 하고많은 화려한 팀들 다 제쳐두고 내셔널리그의 서포터스가 됐을까.
흔히 모든 열정은 어리석은 뭔가를 품고 있다고 한다. 그 이름이 사랑이든 페티시든, 그 대상이 대의의 이념이든 사적 욕망이든. 그래서 어떤 열정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자주 숨막히게도 한다. 철학자 니체가 언젠가 "열정은 그저 해롭기만 한 시기가 있고, 희생자들을 짓누르는 시기가 있다"고 했을 때 그는 열정의 어떤 어리석음, 아니 어쩌면 인간 일반의 본성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열정은 어리석음 때문에 더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이해를 넘어선 헌신의 고집, 다수에 맞서는 소수의 의연한 패배에 우리가 감동하는 것도, 진영이나 지향을 떠나, 그 열정이 선택한 고독한 자리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약자응원현상'이라고 부르는 것, 곧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다면 일반적으로 약자의 편을 드는 경향 역시 저 열정의 패러독스를 운명으로 감당해 온 인간 본성의 귀한 한 단면일지 모른다.
우리는 저들의 열정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보고 싶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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