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의 한 마을.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 속에 '969'라는 숫자가 눈에 띈다. 상점, 주택, 택시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붙은 '969'는 소유주가 불교도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종교 분쟁이 끊이지 않는 미얀마에서 불교도와 무슬림을 구별하기 위해 시작된 '969'가 차별과 유혈 충돌을 심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969'에 나오는 첫 9는 붓다의 아홉 가지 특징, 6은 붓다의 여섯 가지 가르침, 마지막 9는 불교 교리의 아홉 가지 가르침을 각각 뜻한다.
'969' 표식 붙이기의 주동자는 위라투라는 이름의 승려다. 반무슬림 폭동을 주도하다 수감됐던 그는 2012년 출소 후 불교도들의 사업을 지지하고 무슬림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배척하기 위해 '969' 붙이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969'는 단순한 상업적 보이콧을 넘어 금세 폭력 사태의 중요 원인이 됐다. '969' 딱지가 붙지 않은 주택과 상점, 모스크(이슬람교 사원)가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이다. '969' 그룹은 지난해 서부 라인주에서 2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불교-이슬람교 분쟁의 배후 세력으로 비난받았다. 지난달 중부 만달레이주에서 벌어진 유혈 충돌 뒤에도 이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곤에 거주하는 무슬림 티리 민 튄은 "택시에 이 표식이 있으면 탈 생각을 하지 못한다"며 "숫자를 붙이는 사람은 차별을 원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969' 붙이기가 인터넷과 무료 신문의 발달을 힘입어 나라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양곤과 만달레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 딱지를 붙인 건물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슬림 차별에 동의하지 않는 불교도들도 괜히 폭력 사태에 휘말릴 것이 두려워 집과 가게에 '969'를 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독교도나 힌두교도는 무슬림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복장으로 종교를 강조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 기반을 둔 자문회사 메이플크로프트는 "신국수주의를 토대로 한 차별 운동"이라며 "반무슬림 정서를 넘어 미얀마의 모든 소수계층에 대한 박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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