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이 죽었다고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장국영을 잊은 지 오래였다.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해피투게더' 등의 작품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자주 내한해 '투유 초콜렛' 등 다수의 우리나라 CF에 출연하기도 했던 이 홍콩배우를 기억하기엔 낼 모레 마흔을 바라보던 당시 내 나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죽음이 새삼 그에 대한 사랑을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은 홍콩 만다린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필 만우절이었다. 그는 마치 거짓말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방식을 선택했다. 촬영 중이던 영화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둥,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고전 중이었다는 둥 그의 죽음은 당시나 지금이나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였는데, 역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의 장례식 풍경이었다.
당시 홍콩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가 유행하던 때라 그의 장례식은 온통 검정 정장에 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행렬로 뒤덮혔다. 이 기괴한 이미지는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되고 한반도 한 귀퉁이 자기 방에서 인터넷 채팅을 하고 있던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게 되었다. 일종의 침묵시위의 퍼포먼스처럼 비춰진 이 장례식이 세기 전환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우울과 불안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1971년 생 소설가 김경욱은 이 세대 감각을 한 편의 소설로 완성했다. 가 그것이다. "90년대의 캠퍼스에서 어지간히 끼 있고 눈치 빠른 녀석치고 한 번쯤 영화감독을 꿈꾸지 않은 자들은 없었다"고 회고하는 소설의 화자는 아버지가 벌려놓은 사업 채무의 연좌제에 희생된 신용불량자다. 그는 장국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혼한 아내와 처음으로 함께 본 영화 '아비정전'을 떠올린다. 그들에게 그 영화는 행복했던 날들의 기억을 대변한다. 이들 세대에게 공통의 기억이란 거의 대부분 문화적 체험에 근거한 소비의 추억이다. 그들은 랑데부 레스토랑-결혼기념일, 송아지 안심 스테이크, 닭고기 가슴살 샐러드, 이탈리아산 레드와인, 광화문 우체국-장인 생신 선물, 붉은 색 등산 재킷 등의 소비의 파편을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된다.
돌이켜보면 장국영은 문화적 기억을 공유한 세대의 아이콘이라고 할 만하다. 그는 이 나른한 세대의 현실적 무능력을 암시하듯 언제나 적룡이나 주윤발 같은 형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 보호가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일명 '패밀리'로 지칭되는 사악한 범죄조직의 원죄를 대속하는 것은 언제나 이 나약하고 기구한 막내, 장국영이다. 우리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죽음을 전하지 않은 채 아기만 보고 싶어 하던 '영웅본색'의 장국영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구제금융 시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시 된 세대의 우울한 자기초상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장국영의 죽음 이후 만우절은 그를 기리는 추모의 날이 되어 버렸다. 그의 사후 10주기에 해당하는 올해의 만우절은 더욱 소란스럽다. 중국에서는 장국영 10주기 기념 퍼포먼스 '계속 사랑해, 10년'이 화려한 중화권 스타들의 노 개런티 공연과 함께 진행되었고,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이 재개봉되는 등 그를 기억하고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뜨겁다.
소위 '상처받은 영혼'을 추모하는 작업을 통해 지나간 90년대의 상실감을 보상하려고 하는 것일까.'건축학개론'이나 '응답하라, 1997' 등 뒤늦게 유행 모드를 형성하고 있는 90년대의 문화적 추억과 더불어 장국영에 대한 추모의 염은 우리 사회가 어느새 문화적 체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강렬한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웅변한다. 이 연대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해질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죽은 자들과 더불어 살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산다. 장국영, 김광석, 그리고 기형도.
/신수정 문학평론가ㆍ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신수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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