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바둑리그 일정 나란히
바야흐로 한중 양국 모두 바둑리그 시즌이다. 한국의 2013 KB바둑리그와 중국의 갑조리그가 이번 주에 나란히 개막했다.
KB리그는 9일 개막식에 이어 11일 한게임과 포스코켐텍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9개월간의 대장정에 돌입했고, 갑조리그는 지난 4일 개막해 5일과 7일 1, 2라운드 경기를 치렀다. KB리그는 8개팀이 출전해 연말까지 더블리그 방식으로 14라운드 경기를 치르며, 갑조리그는 12개팀이 역시 더블리그로 22라운드를 소화한다. 중국에서는 6월 15일부터 23일까지 16개팀이 출전해 7라운드 경기를 벌이는 을조리그도 열린다.
한중 양국의 바둑리그가 개막하면서 가장 바빠진 이들이 바로 한국의 상위 랭커들이다. 국내 최정상급 기사 14명이 한국과 중국을 수시로 오가면서 KB리그와 중국리그에 겹치기 출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랭킹 1위 이세돌을 비롯해 박정환(2위) 김지석(3위) 박영훈(4위) 조한승(5위) 최철한(6위) 나현(15위) 변상일(18위)이 갑조, 강동윤(8위) 이영구(10위) 김승재(11위) 이창호(13위) 안국현(23위) 이원영(26위)이 을조리그에 용병으로 나선다. 현재 군 복무 중인 백홍석(7위), 원성진(9위), 윤준상(12위)을 제외한 13위 이내 톱랭커 전원과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신예기사들이다. 어쩌면 이렇게 알토란같은 강자들만 콕 찍어서 스카웃했는지 중국 바둑계의 섭외 능력이 놀라울 정도다.
한국의 톱랭커들이 줄줄이 중국리그로 몰려가는 가장 큰 이유는 파격적인 대국료 때문이다. 각자 소속팀과 개별적으로 용병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정확한 액수나 지급조건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고 대우인 이세돌이 판당 10만위안(1,800만원), 나머지 선수들은 평균 5만위안(900만원) 안팎의 승리수당을 받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저한 승부사답게 이겼을 때만 대국료를 받고 지면 한 푼도 안 받는 성공불 방식이지만 10판 출전해 승률 60%만 올려도 엄청난 액수다. KB리그 대국료가 승자 125만원, 패자 50만원이니 도무지 비교가 안 된다. 중국의 강자들과 실전 경험도 쌓고 짭짤한 부수입까지 올릴 수 있어 일거양득인 셈이니 국내 상위 랭커들이 매년 앞을 다퉈 중국리그로 달려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국내 간판스타들이 중국리그에 겹치기 출전하다 보니 KB리그는 물론 다른 국내 기전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갑조리그 1, 2라운드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 때문에 이달 초 열린 국수전 예선과 물가정보배 예선 대국이 줄줄이 연기됐다. 정상적인 대회 진행의 흐름이 끊겨 박진감이 떨어지고 대국 상대에게도 본의 아니게 피해가 간 셈이다.
그뿐 아니다. 자칫하면 KB리그 개막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할 뻔 했다. 한국기원이 일찌감치 KB리그 개막식 날짜를 9일로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중국기원이 5일 항저우기원에서 갑조리그 개막식을 갖고 6일과 8일 현지에서 1, 2라운드 통합경기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그래서 한국 용병들은 8일 항저우에서 갑조리그 경기를 치른 후 당일 저녁 상하이를 경유해 귀국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4월부터 항공사 운항스케줄이 변경돼 8일 저녁 서울행 항공편이 없어졌다. 갑조리그 경기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이 다음날 오전 11시 서울서 열리는 KB개막식에 참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각 팀의 주장들인데 주장들이 빠진 개막식이 열릴 판이었다. 부랴부랴 한국기원이 중국기원에 사정을 설명해 다행히 갑조리그 개막식과 1, 2라운드 경기 일정을 하루씩 앞당기기로 했다. 8명의 한국 용병들은 7일 경기를 마치고 8일 오전에 귀국해 개막식에 간신히 참석할 수 있었다.
앞으로 KB리그는 정규시즌 내내 중국리그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5월 중에만 토요일인 4, 9, 11, 18일에 갑조리그 경기가 잇달아 예정돼 있다. 모두 KB리그 일정과 겹치므로 해당팀들은 대부분 주장 없이 경기를 치러야 한다. 더욱이 을조리그가 열리는 6월 15~23일은 한국 용병 여섯 명이 모두 자리를 비워야 한다. 넷마블은 이창호, 이원영 주전선수가 두 명이나 빠지고 포스코켐텍도 주장 강동윤 없이 잇달아 두 경기를 치를 판이다.
락스타리그 선수들이 4명이나 대기하고 있으므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경기를 치를 수 있겠지만 각팀 간판스타들이 출전하지 않으면 자연히 경기의 질이 떨어지고 팬들의 관심도 멀어진다. 뾰족한 해결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최선책은 KB리그가 중국리그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커지는 길뿐이지만 그게 언제쯤 가능할 지 KB리그 관계자들도 답답한 심정이다.
한편 중국 갑조리그에 출전한 한국 용병들은 1, 2라운드 경기 결과 대체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세돌과 최철한이 각각 2승을 올렸고 김지석, 나현, 변상일이 1승1패, 박정환이 1승을 거뒀다. 반면 조한승은 1패, 박영훈은 2패로 부진했?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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