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줄거리 요약이 부질없는… 꿈과 현실이 서로를 파먹는 세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줄거리 요약이 부질없는… 꿈과 현실이 서로를 파먹는 세계

입력
2013.04.12 11:24
0 0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작가들이 있다. '이야기성'이라는 것의 농도에 저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어떤 지독히도 반서사적 소설이 '소설은 이야기'라고 확고하게 믿는 독자들마저 무릎을 꿇게 만드는 일도 있다. 이런 소설들이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 소설이 이야기가 아니고자 하는 이유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효과가 이야기가 자아내는 감동의 자리를 충분히 메우고도 남기 때문이다.

낯설고 비서사적인 세계로 특징 지어지는 배수아의 소설 쓰기가 욕망하는 것도 바로 이것일 터. 등단 20주년을 맞아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소설 는 꿈과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임없이 몸을 바꾸는 몽환의 세계를 그린다.

부질없는 줄거리 요약은 생략하자. 일부 설정과 묘사가 동일하게 반복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자기동일성을 끊임없이 회의하게 만드는 화자의 서술은 낯설고 혼란스럽다. 29세의 전직 여배우 출신의 오디오 극장 직원 김아야미와 49세의 독일어 강습 교사이자 텔레폰 서비스 대화상대인 여니가 동일인물인지 별개의 인물인지조차 헷갈린다. 남자주인공이라 할 만한 김부하조차 아야미를 49세의 여자시인으로 오해하고 사랑한다. 이 혼돈과 몽환의 세계에서 몇몇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 구절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소설가 김사과는 작품 해설에서 "재현을 거부하는 존재를 읽어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환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환영의 출처를 알아낼 수는 없다. 그러니 포기하라. 포기하고 눈을 감아라. 그러면 한나절쯤 아주 희귀하며 기이한 꿈에 잠겨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어 산문 문학이 주는 최상의 즐거움을 줄 것이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확연히 구분될 듯싶다. 민주적으로 이 작품에 대한 호오를 취향의 문제로 환원한다면,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효과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낯설고 혼돈스러운 것이 대체로 미학적인 범주에 속한다고 믿는가. 이 작품에서 읽히는 것은 이해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도인가, 작가의 의지인가.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