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에 무릎 꿇고 약자에겐 강자 되는 '강자 동일시'가 경쟁의 굴레 양산 한국사회 뼛속까지 경쟁심리 물들어"게으른 것도 아닌데 힘들어지는 현실 풀뿌리 민초들이 깨닫고 바꿔야" 일자리 나누기·사회적 자본 재분배 제안
끊임없이 경쟁으로 내몰리는 사회에서 우리는 허덕이고 있다. 1등만 대접받는 세상에서 대다수의 평범한 이들은 루저가 된다. 루저는 좌절하고 1등은 영원히 1등을 누릴 수 없어 또 더 심화된 경쟁으로 뛰어든다. 맹목적으로 치닫는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고 있을까.
는 경쟁사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것을 중시하고 부추기는 건 처음부터 잘못된 게임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경쟁이야말로 인간과 사회 발전의 효과적이라는 지배자들의 논리가 내면화되어 있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린 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통한다. 한발 더 나아가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질서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자고 권유한다. 저자는 강수돌(52) 고려대 세종캠퍼스 경영학과 교수. 학교 근처 조치원 산골 마을에 귀틀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산 지 햇수로 15년째인 그와의 인터뷰는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목인 영등포 역사에서 진행됐다.
'팔꿈치 사회(Ellenbogengesellschaft)'는 누가 봐도 반칙이 틀림없지만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을 꼬집는 독일 말로, 치열한 경쟁의 굴레 속에 갇힌 한국사회를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2008년 생각의나무에서 나온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소개되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의 개정 증보판이다. 그러나 기존 내용에 현재의 상황을 덧붙이고 몇몇 챕터가 새로 추가되는 등 절반 이상을 새로 썼다. 강 교수는 "어른이고 아이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사회,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아닌데 자꾸 늪에 빠지는 기분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가 그 뿌리를 더듬고자 책을 보강했다"고 말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경쟁의 내면화'에 대한 경계다. 그는 학교 다닐 때 한번쯤은 해봤을 법한 선착순 달리기를 예로 들었다. "철봉을 돌아 오라고 해서 1,2,3등은 열외를 시키는 식으로 계속 경쟁을 붙여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누가 1등을 하든 하나도 안 중요해요. 그저 혼신을 다해 경쟁하는 그 분위기가 필요한 거지." 학생들은 왜 뛰어야 하는지 모른 채 다 선생님한테 종속된다. 경쟁의 논리에 몸을 맡긴 채 그저 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렇게 안 살아도 돼요. 소득이 연간 1,000달러도 안 되는 부탄이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잖아요. 직장인들 사이에서 귀농ㆍ귀촌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뭔가 이 사회의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는 반증이죠." 아이들이 자신이 밟았던 경쟁과 좌절의 코스를 다시 가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갑갑했다는 그는 99년부터 조치원 서당골로 들어가 아이들을 키워냈다. 아이들 셋은 학력인정을 받지 못해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 대안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스물여섯 된 큰 아들은 남들보다 늦게 하고 싶은 걸 발견해 외국 대학에서 재즈피아노를 전공하고 있다. 둘째와 셋째는 나란히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합쳐진 6년제 대안학교의 고3으로, 입시준비 대신 철학 등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파고 있다.
책은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저 제쳐놓고 생계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스스로를 강제하고 있는 현실의 우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나는 할 수 있다'라고 부추겨지는 긍정의 과잉은 결국 우리를 좀 먹을 뿐이다. 강 교수는 폭력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생존 후에 그와 비슷해지려는 추세, '강자 동일시', 즉 자본이 강제하는 생존경쟁을 마치 자신의 논리인 것처럼 굳게 받아들이는 현상이 경쟁을 계속 양산한다고 본다. "1차 강자 동일시가 강자에게 무릎 꿇고 굴복해 생존권을 얻는 거고, 2차 동일시가 약한 자에게 강자가 되는 겁니다. 그런 층위로 내가 진정하게 마음속에서 느끼는 걸 억압하고 강자의 정서와 논리를 흡수한 '정서적인 프롤레타리아'가 되는 거죠. 노동자들이 고생해서 철야작업 하면서 내 자식만큼은 일류대학 가서 나보다 높은 사람이 되길 바라요. 그런데 과연 그게 다 일까요. 주인공은 바뀌지만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질서가 안 바뀌는데…."
그 대안으로 책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사회적 자원의 민주적 재분배 등을 제시한다. 노동시간 나누기가 결국 보수가 적은 질 낮은 일자리를 여러 개 생산해 투잡, 쓰리잡을 뛰게 한다는 비판론에 대해 강 교수는 단지 노동시간 단축뿐 아니라 사회적 구조조정이 함께 동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주거나 교육, 의료문제를 사회가 같이 책임지는 복지사회에서 가능한 얘기죠. 공공지출 중 낭비되는 걸 지혜롭게 막는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습니다. 사실 의식주 해결과 문화생활을 즐기는 등 삶의 여유를 누리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거든요."
강 교수는 "고등학교 때 한번 1등 했다고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냐"며 소수의 승자들도 1단계 성공을 거뒀다고 해도 2라운드에 가면 더 힘든 게임을 해야 하고 좌절을 맛보는 만큼 구조의 혁신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룰이 잘못되어 있어요. 우리 사회 엘리트 층의 이름만 바뀔 뿐이죠. 꼴찌의 애환을 모르는 권력자들은 승자의 관점에서만 봅니다. 결국 풀뿌리 민초들이 그걸 깨닫고 바꿔야 합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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