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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날 슬픈 두 여인… 그 날 이후, 소리없이 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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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날 슬픈 두 여인… 그 날 이후, 소리없이 우네

입력
2013.04.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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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싫어하는 세상에서 옛날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나 푸근하다. 새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무섭다. 모든 새것들은 다 무서운 것이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는.'(137쪽)

공선옥(50)의 새 장편소설 는 '5월 광주'를 다룬다. 이것은 분명 옛날이야기이다. 이 옛날이야기는 함부로 쓸 수도 없고, 이미 너무 많이 쓴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성한 여자들의 입으로, 상처와 흔적을 통해서만 그때 그 일을 에둘러 이야기하는 이 새로운 소설은 아리도록 슬프고, 외람되게도 아름답다.

탈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의 용어를 잠시 빌리자면, 작가는 묘사와 재현을 통해 역사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하위주체(subaltern)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대신, 끊임없이 말을 걸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대사가 두드러지는 서사 구조로 축조되어 있다. 배움이 얕은 전라도 여자들이 징한 사투리로 '사는 것이 이리도 애닯다잉' '어째 그러까. 어째 세상이 다 그러까. 어째서 그러까' 울먹일 때, 읽는 이의 가슴 한 켠에도 불쑥불쑥 파도가 밀려온다. 작가도 작가의 말에 '나의 이 허술한 글을,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혼자 노래하고 혼자 울었던 내 어머니에게 바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들어주는 사람 없어 혼자 울어야 했던 그대, '광주'에 바친다'고 썼다.

소설의 주인공은 새정리에 사는 열다섯 살 친구 정애와 묘자다. 맏딸 정애는 아버지가 투전판에서 돈을 모두 잃고 도망가는 바람에 말 못하는 어머니와 세 동생을 홀로 먹이고 돌본다. 하지만 세계는 인간존재의 범상한 야만성으로 가득 차 있다. 순박한 줄 알았던 마을어른들은 하나 둘씩 정애네 돼지를 가져가고, 오리를 가져가고, 담장을 무너뜨린다. 새마을연쇄점에서 하드를 얻어먹고 주인에게 몸을 뺏긴 여동생 순애는 혼이 나가 시름시름 앓다 죽고,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던 정애는 '부로꾸(벽돌) 찍는 남자'에게 끌려가 개울가에서 몹쓸 짓을 당한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한 것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는 것이 나는 더 무서웠다. 무서워서 와들와들 떨렸다.'(21쪽)

엄마가 쌍둥이를 낳다가 목숨을 잃자 정애는 동생들을 데리고 시내(광주)로 나가 콩나물 장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이 흐른 1981년, 재가한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시내로 나온 묘자와 실성한 정애는 우연히 다시 만난다.

지난해 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직접적으로 서술되거나 묘사되지 않는다. '지난봄에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고, 군인들이 정애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추정할 뿐이다. 야만은 그 해 5월의 일만은 아니다. 정애에게 가해지는 몹쓸 짓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된다.

역설적으로 이 소설에서 정상인 사람은 미친 사람들뿐이다. 정애뿐이 아니다. 엄마의 식당일을 돕던 묘자는 사람들이 '오일팔 또라이'라고 부르는, '폭도'로 오인돼 몸과 영혼이 만신창이가 된 카센터 남자 박용재와 사랑에 빠져 '눈 오는 날, 무채를 썰다, 차박차박 걸어서' 그를 따라간다. 엄마는 그런 딸의 자태가 왠지 거룩해 보였다.

피해자만 제 정신이 아닌 것도 아니다. 묘자는 공수부대 무전병이었던 동네 언니 용순의 남편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보러 용순과 함께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간다. 하지만 '용순의 남편 오만수가 나쁜 사람인지, 훌륭한 사람인지를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만을 알아볼 수 있을 뿐. 왜 지금 맞은 사람이나 때리고 몹쓸 짓을 한 사람이나 똑같이 아픈 것일까.'

'아바아바사융기샹가바!' 같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되뇌이고, 끊임없이 주문 같은 노래를 부르는 정애는 몹쓸 짓을 당하는 순간마저도 노래를 계속한다. 이 미친 시대에 언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는 것이다.

세월을 훌쩍 건너뛰어 백발이 된 두 여인의 짧은 스침을 그리는 마지막 네 페이지는 두고두고 가슴에 여운을 남긴다. 열다섯 정애에게 글 모르는 아버지가 대필로 보낸 편지의 한 구절처럼 '우리는 우야든동 살아내야 하갯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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