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판결이 뒤집힌 이른바'낙지 살인사건'은 정황 증거를 중시했던 1심과 달리 2심은 낙지를 먹다 우연히 기도에 걸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법의학자들의 증언에 더 무게를 둬 무죄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시신 등 직접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1심은 피고인 A(32)씨의 여자친구인 B(당시 22세)씨의 사망 원인이 비구폐색(코와 입이 막혀 질식 하는 것)이라고 봤다. ▦B씨가 평온하게 누워있었고 술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았던 점 ▦B씨 입에서 산낙지를 꺼냈다는 A씨 진술이 자주 바뀌는 점 ▦낙지가 해물탕 용으로 쓰는 큰 것이라 통째로 먹을 수 없었던 점 ▦B씨가 치아우식증으로 어금니가 좋지 않아 산낙지를 먹기 어렵다는 점 등을 볼 때 도저히 B씨가 낙지를 먹다가 질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 2심 법정에 나와"수천~1만여건의 검시를 진행해봤지만 피해자 몸에 아무 상처가 없는데도 비구폐색으로 사망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기도폐색(음식물 따위가 목에 걸려 질식하는 것)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 법의학자 3명의 증언을 중시했다. 사고사 가능성을 열어두자 유죄로 보이던 정황 증거가 힘을 잃었다.
2심은 ▦질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얼굴 표정이 펴지기 때문에 편하게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며, 술자리 바깥쪽에 앉아 있었다면 질식해 몸부림을 쳤더라도 술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고 ▦당시 A씨가 극도로 당황해 낙지를 꺼낸 정황에 대한 진술이 바뀔 수 있으며 ▦현장에서 발견된 낙지 머리가 4.3~4.8cm로 입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고 ▦B씨가 동생에게 낙지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던 적이 있는데다 현장에 B씨 쪽에도 젓가락이 놓여있어 B씨도 낙지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의학자들의 진술에도 엇갈린 부분은 있었다. 전석훈 국과수 법의학과 전문의와 이정빈 단국대 법무행정대학원 교수는 "피해자가 만취해 반항이 약해진 상태라면 부드러운 천 등을 이용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해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는 1심이 유력한 살인방법으로 지목했던 방식이다.
반면 한길로 서울법의학연구소 소장은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술에 취해 있어도 본능적 생존 욕구 때문에 강력하게 반항을 하게 된다"며 "아기나 노인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입 주위에 상처를 남기지 않고 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증언해 2심의 무죄 심증을 굳혔다.
보험 사기에 대한 판단도 달랐다. 1심은 A씨가 B씨 앞으로 월 13만원을 내야 하는 거액의 생명보험을 든 뒤 범행 보름 전 보험금 수령인을 자신으로 바꾼 것은 고의성이 짙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보험금 중 상해사망을 위한 것은 1만4,200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암 등 질병 보장 금액인 점과 보험 수령인 변경서에 B씨가 직접 서명을 했던 점에 비춰 "B씨가 부모와 사이가 나빠 보험금 수령인을 나로 바꾸길 원했다"는 A씨 진술도 설득력 있다고 봤다.
A씨는 2010년 4월 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B씨를 질식시킨 뒤 보험금 2억원을 타낸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지난해 10월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는 지난 5일 A씨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9일 검찰이 상고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 결론이 날 예정이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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