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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까지 내 40억 올인했는데… 하루 1400만원씩 피해액 늘어 부도 준비하는 심정 악몽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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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까지 내 40억 올인했는데… 하루 1400만원씩 피해액 늘어 부도 준비하는 심정 악몽 같다”

입력
2013.04.1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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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문이 닫힌 지 벌써 9일째. 북한 근로자들이 철수한지도 사흘이 지났다. 나라 전체가 불안에 휩싸여 있지만, 사업의 존폐 기로에 선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더 절박한 상황이다.

개성공단에서 의류관련공장을 운영하는 A대표(그는 회사명과 성명 공개를 원치 않았다)는 11일 본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개성공단 입경제한 조치가 취해진 지난 3일부터는 "하루하루가 악몽 같다"고 했다. 납품해야 할 물량을 대지 못하게 되면서, 매일 피해금액이 1,400만원씩 늘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매출손실만 1억 원이 넘는다.

A대표가 개성공단에 첫 발을 들인 것은 지난 2007년이었다. 그는 "땡볕이 내리 쬐던 개성의 첫 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성공단은 사업실패로 좌절에 빠져 있던 A대표가 찾은 마지막 재기의 돌파구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부도위기에 몰린 그가 처음 눈을 돌린 곳은 중국이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던 다른 기업들처럼 그도 중국에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중국은 녹록한 곳이 아니었다. 인건비와 임대료는 계속 뛰었고, 결국 투자액의 반도 건지지 못한 채 중국을 떠나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A대표에게 개성공단은 마지막으로 잡은 지푸라기였다. 서울과 중국의 공장을 모두 처분하고 그 돈으로 개성공단에 공장을 새로 지었다. 그야말로 '올인'이었다.

처음 투자금액은 10억원 남짓. 더 크게 벌일 형편도 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으로 사업에 몰두하다 보니 회사사정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개성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한 A대표는 차곡차곡 모아둔 전 재산과 지인들로부터 빌린 돈 30억원을 합쳐 지난 해 공장증축에 들어갔다.

지난 정부시절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신규투자는 원칙적으로 금지(5ㆍ24 조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공장을 갖고 있던 기업에 대해선 추가투자를 허용했기 때문에 증축이 가능했다. 그는 "이 공장이 완공되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1년을 가지 못했다. 개성공단의 문이 닫히고 북한근로자들까지 철수하면서 공장가동도 증설도 모든 게 올 스톱되고 말았다. 현재 공정률은 20% 남짓. 사태가 장기화되면 공장은 폐허가 되고, 기계는 녹이 슬 것이다.

남북경제협력보험에 가입은 했지만 규정상 완공 전에는 보험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자칫 40억원이 넘는 투자비 전액을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는 "결과적으로 판단을 잘못한 내 탓"이라며 "정부나 남북정세 등 남 탓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10일은 월급날이었다. 그의 공장엔 남측직원과 북측근로자를 합쳐 240명 정도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입경이 막히는 바람에 월급을 주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지금으로선 3,600만원 정도의 급여를 마련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

설령 개성공단의 문이 열려도 정상화까지는 길이 험하다. 그는 "이번 사태를 경험한 거래처들이 계약연장을 해줄 리 없다"며 "양쪽 길이 다 막다른 골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부도'를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든 살 방도를 찾고 있지만,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A대표는 "나도 나지만 실업자 신세가 될 지도 모를 (남측) 직원들한테 미안하다. 부도를 맞게 되면 집을 팔아서라도 직원들 월급부터 챙겨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얼마 전 개성공단에서 나온 직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20분 넘게 개성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걱정했다. 그의 휴대폰 벨 소리는 북한의 대중가요 '반갑습니다'였다. 그만큼 개성에 모든 것을 걸었던 그였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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