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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숙 교수의 문학 속 간호이야기] 날씬함 강요하는 사회가 낳은 거식·폭식증… 치유법은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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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숙 교수의 문학 속 간호이야기] 날씬함 강요하는 사회가 낳은 거식·폭식증… 치유법은 '존중'

입력
2013.04.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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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시대엔 없었는데 오드리 헵번 이후 등장한 병이 있다. 날씬함에 대한 이상심리다. 풍성함과 관능미를 찾던 사람들이 헵번 이후엔 작고 마른 몸매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59년 바비인형이 출고됐고, 사람들은 살아있는 바비인형을 원하게 됐다. 심하게 마른 사람도 본인은 살쪘다고 생각한다. 병에 걸렸는데도 자각하지 못하는 병이다.

정찬의 소설 에는 폭식증에 걸린 여자가 등장한다. 폭식증은 음식을 조절할 수 없는 식이장애로, 반복적인 폭식 행동과 몸무게 증가를 막으려는 목적으로 구토 행동까지 보인다. 소설 속 그의 몸은 거대하다. 움직이면 살이 출렁인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진다. 살찌는 것에 대한 걱정과 공포는 손가락을 목구멍 안으로 집어넣게 한다. 그렇게 폭식과 구토와 배설을 반복한다. 폭식증의 증상이다.

그가 느끼는 격렬한 허기는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못한 갈등에서 비롯된다. 아버지는 여자가 생겨 어머니와 그를 버렸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그리움이 폭식을 하게 한다. 또 대학 시절의 거부된 사랑 때문이다. 선배에게 고백했을 때 선배는 충고했다. "넌 남을 사랑할 자격이 없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데 어떻게 남을 사랑해? 네 몸을 봐. 자신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런 모습을 할 수가 있니?" 사람들의 경멸과 동정 어린 눈빛은 그를 기계적으로 먹게 한다.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 폭식증의 임상적 특징이다.

그의 소망은 바비인형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날씬했다면 상처 받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이제 그녀는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다. 마음 놓고 삼키는 유일한 음식은 물뿐이다. 폭식으로 인한 부작용이다.

소설은 폭식과 거식의 반복을 자아가 분열된 형태로 형상화한다. 식사를 거부하는 거식증과 엄청난 양을 먹고 토하는 폭식증은 겉으로는 다른 병처럼 보이지만 같은 질병의 다른 단계이다. 살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날씬해지고 싶은 바람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사회에서 뚱뚱한 체형은 자기관리와 능력 미달이라는 논리를 부여한다. 다이어트로 날씬해진 외모는 능력과 성실성을 대변한다. 그래서 계량화된 치수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성형수술 횟수가 13.5건으로 세계 1위다. 의사의 손에 의해 똑같은 얼굴이 태어난다는 '의(醫)란성 쌍둥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획일화된 치수 논리는 미에 대한 패러다임을 강요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말라야 사랑 받는 사회는 여자들을 퇴행(Regression)하게 만들었다.

식이장애는 다이어트로 인한 질병이 아니다. 마음에 감춰진 갈등이 '바비 인형이 되고 싶다'는 욕구를 뒤집어쓰고 병적인 강박으로 나타난 것이다. 거식, 폭식, 구토를 반복하며 구원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구원 신호에 응답하는 것은 몸무게와 상관없이, 어떤 상태에서도 그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 스스로 자기통제가 될 때까지 그를 지지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 치유이고 간호이다.

횡효숙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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