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ㅇ선생님은 '우수반'을 맡지 마세요. 실력이 됩니까?"
개학을 앞둔 지난 3월초 서울 강북지역의 한 일반고인 A고. 교장의 한 마디에 1학년 영어과목 교사가 예고도 없이 바뀌었다. 이 학교는 14개 학급중 2개 학급을 '우수반'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우수반을 제외한 일반반은 대개 기간제 교사에게 맡기고, 우수반에는 '우수교사'를 배치한다. 학교는 영어회화 성적 1~80등 학생을 우수반에 배정한 뒤 '이중언어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지만, 이 학급과 일반학급의 전과목 평균점수는 최대 40점까지 난다. A고 교사 B씨는 "학교측은 이중언어 수업을 빌미로 특목고나 자사고에 떨어지고 온 학생들을 우수반에 몰아넣고 있다"며 "학교측의 설명대로 특별학급이라면 우수반 내에서만 성적을 매겨야 하지만, 전체학생을 대상으로 석차를 매겨 우수반 학생들의 내신만 높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상위권 학생만 1,2개 반에 몰아넣고 온갖 특혜를 주는 일반고의 편법적인 우수반 운영사례가 늘고 있다. 명문대 진학을 원하는 일부 학부모의 요구와 진학률을 높여 우수 학생들을 끌어들이려는 학교 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벌어지는 씁쓸한 현상이다.
외고에 지망했다 떨어진 C군은 우수반을 운영하고 있는 종로구의 일반고에 다니고 있다. C군은 신학기에 배정받은대로 3반으로 등교하지만 조회가 끝나면 1반으로 가서 수업을 듣는다. 이 학교는 1~5반, 6~10반 중 상위권 학생을 1반과 6반에 몰아넣는 편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7교시가 끝나면 다시 3반에 와서 종례를 하고, 시험도 3반에서 친다. 오전, 오후 교실을 오가느라 C군은 진이 빠진다. C군의 부모 D씨는 "학교 차원에서 장학금이나 수상 실적 등 '스펙'을 관리해줘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지만 대부분의 일반반 학생들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이중, 삼중의 차별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일반고가 우수반과 일반반을 이원화 운영하는 것은 비교육적 처사이지만,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교육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A고 교사 B씨는 "서울시교육청에 3~4번 민원을 제기했지만 '그때마다 '"생의 특성과 수준, 희망을 최대한 고려했고, 교과성적 순으로 배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우수반 2개를 운영하고 있는 노원구의 한 일반고 3학년 김모(18)양은 "우수반에 못 끼는 친구들은 열등감이 엄청나다"며 "교사들조차 '역시 너희는 공부를 잘하니까 모든 일을 잘한다'는 식으로 우수반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칭찬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반 편성과 관련해서는 본청에서 내려가는 지침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떤 교육적 효과를 노리고 학교에서 편성했는지 확인해 보겠다"고 밝혔다. 일반고에 다는 자녀를 둔 학 한부모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 안 하는 애들은 늘 있었고, 일으켜 혼내서라도 가르치려는 게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노력이 없다"며 "입시교육만 있고 고등교육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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