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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우수생 집단이 잃어버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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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우수생 집단이 잃어버린 것

입력
2013.04.1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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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처럼 너무나 다른 인생이 '친구'로 이어지는 것이 고교 동창 관계의 묘미 중 하나다. 그런 만남에서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것이 꼭 사회적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나와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사회 경력을 쌓은 친구들이 있기에 학교 성적만으론 나타낼 수 없는 인생의 경쟁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인간관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고등학생들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처럼 다양한 편차를 보일 것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너무 일찌감치 비슷비슷한 아이들끼리 구분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고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2,3학년이면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우수 학생들은 외국어고나 과학고에, 그 다음으로 성적이 좋은 중상위권 학생들은 자사고에 지원하는 것으로 길이 정해진다.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들은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로, 그리고 나머지 많은 학생들이 일반고로 간다. 전문가들은 지난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은 결국 고교가 학력별로 서열화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더욱이 학교 유형에 따라 학부모들의 소득도 특목고-자사고-일반고의 순서로 높은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학생은 교육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재력과 학력에 따라 줄지어 선 학교들의 안을 들여다보면 그 구성원들이 너무 균일하다는 점이다. 비슷한 가정소득, 비슷한 학력, 비슷한 목표를 가진 학생들끼리만 모여 그들의 인생도, 우리 사회도 오히려 빈곤해질까 걱정스럽다.

수년 전 카이스트(KAIST)의 한 교수는 카이스트 학생들이 과학고 출신 일색인 것이 학교의 한계 중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과학고 출신들이 분명 머리가 좋고 잘 배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재로 대우받으며 과보호 속에서 자라서인지 스스로 문제를 찾아 풀어보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창의적인 연구주제를 찾고 풀어낼 줄 알려면 학생 구성원이 보다 다양해져서 서로를 자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실제로 카이스트는 보다 다양한 학교 출신의 학생들을 선발하는 노력을 해왔다.

우수한 학생들끼리 모아놓으면 분명 경쟁은 치열해진다. 80년대 특목고가 만들어진 것이나, 고교 다양화 정책으로 자사고가 도입된 것은 수월성 교육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비롯됐다. 70년대 고교 평준화로 전통 명문고가 사라진 데 대한 반발인 셈이다. 과연 특목고 등은 우수 학생들끼리 더 치열하게 경쟁시켰고 그만큼 명문대 진학률도 높았다. 지금 특목고의 위상은 평준화 이전 명문고의 지위를 능가한다. 현직 판·검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가 대원외고(129명)로, 100년 전통의 경기고(55명)의 두 배가 넘는 것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위해 경쟁을 하는 것일까.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한 교실에서 함께 교육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자는 시대에 우리 학생들은 고등교육기관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그룹을 나누고 등급 매기기에만 익숙해지고 있다. '나는 너보다 우수하다'며 구분지을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 다른 재능을 갖고 있다'고 인정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등이든 꼴찌든, 노는 아이든 거친 아이든, 제각각 다른 능력을 발휘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우수한 인재 이전에 시민으로 키우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다.

김희원 사회부 차장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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