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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동네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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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동네 극장

입력
2013.04.1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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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만고만한 단독주택이 저층 건물과 이어져 있는 서울 종로구 옥인동 하고도 골목 안쪽 집(옥인동 47-17)에 극장이 생겼다. '옥인상영관'이라고 이름 붙은 이 극장은 이제 서른두 살이 된 고등학교 때 친구 다섯 명이 뜻을 모아 지난 달 23일 문을 열었다.

마당이 있고 마당에는 나무가 있는 2층 단독주택의 1층 작은 방 하나에 문을 연 극장이라 객석은 불과 15자리. 의자는 동네 수퍼에서 맥주를 사먹을 때 앉아보는 플라스틱 등받이이고 벽과 천정에는 오글보글한 방음지가 덧대어 있다. 창이 있던 자리를 가리고 영사막을 내렸고 벽장이던 곳에 영사기에 해당되는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자리잡고 있다.

극장을 만든 다섯 명이 모두 직업이 있어서 교대로 나와볼 수 있는 주말에만 영화를 상영한다. 상업극장이 아니라서 보여주는 영화는 감독이 저작권을 갖고 상영을 허가한 독립영화들이다. 개막작은 스페인 라카비나 국제영화제 초청작인 '나프탈렌'(감독 주영곤)이고 이번 주말부터는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과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관객상을 받은 '독개구리'(감독 고정욱)가 동시상영 될 예정. 이어 브라질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경쟁작 '도깨비숲'(감독 유후용)이 상영을 기다린다. 토 일요일 낮 12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매시간 영화가 시작된다.

상영실 바로 옆에는 통유리창으로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카페가 있다. 원래는 가정집 거실이던 곳. 입장료 5,000원을 내면 여기서 음료수 한잔을 마실 수 있다. 입장료에서 음료수 전기료 수도료 등 운영비를 뺀 금액은 감독에게도 전달할 예정이다. 돈 벌 생각은 아예 없는 독립영화상영관이다.

이 집은 극장을 만든 다섯 명 중의 한 명이 중학생 때부터 살 던 집이다. 이 동네가 재개발예정지가 되면서 집수리도 어려워지고 집은 낡아가자 5년 전 이사를 가며 빈집으로 남았다. 폐가가 되어가는 공간이 안타깝던 친구들이 의미있게 쓰자고 작년 가을 팔을 걷어붙였다. 다섯 가운데 셋이 미술 전공이라 예술에 관심 많았고 집을 고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여겼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독립영화관도, 미술대안공간도 많이 사라진 것이 안타까우니 독립영화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걸로 생각이 모였다.

재개발이 되면 언제든 떠날 수 있게 큰 돈은 들이지 않기로 했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150포대의 물건을 지하실로 치우고 1.5톤 트럭 2대 정도 나무를 버렸다. 집수리를 위해 돈을 따로 모으지도 않았고 누가 얼마를 쓰는지도 계산하지 않았다. 카톡으로 '이거 이거 고치느라 얼마 썼다' 통지하면 끝. 고치는 사람이 재료를 샀다. 사람마다 100만원 내외의 돈을 쓴 듯. 주말이면 역시 카톡으로 뚝딱 고지해서 시간 되는 사람이 나온다. 자주 못나왔던 친구는 가끔 '내가 밥 살게'하고 띄운다. 젊은이들의 뜻을 기특하게 여긴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받았다. 극장의 핵심시설인 빔프로젝터와 카페의 의자가 모두 기증품. 그들에게도 주변에도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이 작은 극장과 비교되는 것이 지방마다 들어선 거창한 예술회관들. 사람들은 찾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에 빚만 안기는 예술회관은 제발 그만 짓고 이런 작은 극장을 시골 구석구석까지 만들자. 문화예술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달 발표한 극장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30개 시·군·구 중 109개 지역에 영화관이 한 군데도 없다.

옥인상영관 같은 극장은 빔프로젝터와 음향시설, 디비디플레이어가 장착된 컴퓨터만 갖추면 동네 빈집을 활용해서도 만들 수 있다. 문예회관 하나 지을 돈이면 리 단위 마을마다 극장이 들어갈 수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문화예술영화진흥위에 극장실태조사를 의뢰한 것은 전국에 영화관을 세우는 것을 지원할 뜻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시설은 뭐든 번듯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주민들 생활에 밀착한 작은 영화관이 더 많이 더 깊숙이 들어서길 기대한다. 옥인상영관처럼 주민들 스스로의 땀도 들어가면 더욱 좋겠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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