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의 1908년작 '에스타크의 나무들'은 두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배경의 지형이 벽처럼 일어선 듯 보인다. 작은 초록 나무들이 들어선 황색 언덕들은 입방체(cube)들이 쌓여 있는 것 같다. 1908년 11월 파리 칸바일러 화랑에 전시된 브라크의 그림들을 보고 비평가 루이 보셀은 "입방체로의 환원"이라고 조롱섞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현대 미술사를 바꿔놓은'큐비스트' 즉, 입체파는 여기에서부터 정의됐다.
'에스타크의 나무들'을 포함해 입체파 거장들의 작품을 수집해온 화장품 업체 에스티 로더 회장 레너드 로더(80)가 파블로 피카소와 브라크 등의 작품 78점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발표, 미술계가 환호하고 있다. 피카소 작품 33점, 브라크 17점, 후안 그리스 14점, 페르낭 레제 14점 등 그가 37년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이다. 가치는 10억달러(1조 1,315억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입체주의를 연 그림 중 하나로 평가받는'에스타크의 나무들'을 비롯, 첫 입체주의 조각 작품인 피카소의 '여인의 머리'(1909), 피카소가 이탈리아에서 그린 첫 입체주의 작품 '오일 밀'(1909), 피카소가 인쇄술을 이용한 실험을 했던 첫 작품 중 하나인 '더 팬'(1911), 역사상 첫 입체주의 종이 콜라주 작품인 브라크의 '과일 접시와 유리컵'(1912), 조각 사상 처음으로 실제 물건을 사용한 작품 중 하나인 피카소의 '압생트 잔'(1914) 등 미술사에 기념비적인 작품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메트로폴리탄 큐레이터 레베카 레비노는 "기증 작품들은 (입체주의 역사에서) 첫 작품인 것들이 무척 많다"며 감탄했다.
로더 회장은 "입체주의 작품들이 세계 주요 미술관의 한 곳에서 관람되고 연구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토머스 캠벨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장은 "기증작들은 미술관들이 꿈만 꿔왔던 것들"이라며 "이번 기증으로 우리 미술관은 20세기 초기 미술의 산실로 발돋움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뉴욕 맨해튼 아파트에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 응한 로더 회장은 "(입체파와 같은) 어떤 한 미술사조에만 집중하는 원칙과 끈기, 그리고 기꺼이 후한 값을 쳐주려는 의지가 없다면 좋은 미술품 수집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미술관 기증을 염두에 두고 입체주의 작품들에 집중했으며, 개인 큐레이터이자 미술사학자인 에밀리 브라운의 도움을 받아 시장에 나온 가장 좋은 작품들을 고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미술에서 낭만을 배제하고 모래, 톱밥, 신문, 밧줄 등을 이용한 실험을 했던 20세기 초 입체파들은 추상파의 길을 열며 이후 50년을 호령했다. 그러나 미술시장에서는 인상파와 후기인상파에 대한 선호에 밀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구입이 가능했다. 로더 회장은 "앞으로도 작품 수집을 계속해서 미술관에 기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기증작들은 내년 가을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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