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경남지사가 불러일으킨 '진주의료원 논란'이 거세다. 이미 논란의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폐업 반대' 주장이 압도적이고, 한때 보수 여당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사회적 약자와의 소통 능력을 자랑했던 홍 지사는 어느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적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정치적 여파를 우려해 말리기에 나섰으니, 아무리 원칙과 고집에서 박근혜 대통령 못지않다는 홍 지사라도 곧바로 진주의료원 폐업을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고 이번 논란이 홍 지사의 일방적 패퇴로 막을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조건부 항복이라면 그 조건에 어느 정도 목적이 녹아 들어갈 것이고, 무조건 항복이더라도 얼마든지 할 말은 준비해 두었을 법하다. 지켜보기에도 이번 논란의 전개 과정과 그 내용에 아쉬운 게 한 둘이 아닌데, 당사자야 오죽할까.
우선 지방자치단체의 개별적 문제가 자치체 내부의 논의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전국적 문제, 중앙정치의 문제로 번진 점이 아쉽다. 모처럼 지방의 자율성을 실현할 기회를 놓침으로써 앞으로 한동안 지방의 어떤 문제든 결국 중앙정치에 좌우될 것임을 예고했다.
또한 경남 내부에서도 대단히 특수한 진주의료원의 문제가 전국 공공병원 전체의 보편적 문제로 비틀린 것도 아쉽다. 진주의료원의 폐쇄 방침이 그 동안 거론됐듯 단순한 적자 운영에서 비롯했을 수는 없다. 병원의 적자 운영은 대부분의 대학병원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공공병원이야 말할 것도 없다. 공공병원의 공공성은 어차피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적자를 메움으로써 겨우 획득되는 것이고, 진주의료원을 제외한 경남의 다른 18개 공공의료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진주의료원만 유독 폐쇄 대상에 특정됐다면, 그 특별한 이유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야 했다. 진주의료원의 운영적자는 특별해도 너무 특별하다. 의사가 고작 20명인 중소병원이 어떻게 260명 넘는 인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누적부채가 400억 원 가깝고, 당기 부채만도 252억 원에 이른 상태에서도 급여와 복리후생비를 포함한 인건비로 236억원(2011년 재무제표)을 지출할 수 있었을까. 경영성과 평가에서 잇따라 최하위 등급을 받고도 구체적 경영개선 성과를 보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궁금증을 푸는 대신 곧바로 지방공공병원의 폐쇄는 공공의료의 독자적 목적과 가치의 부인이라고 규정하고, 심지어 영리병원 도입의 신호탄이라는 우려까지 실었으니 더 이상 진지한 논의는 불가능했다. 도덕적 주장과 비도덕적 주장이 한자리에서 우열을 다툴 수는 없다. 그 당연한 귀결로 진주의료원을 폐쇄할 경우 의료급여 대상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혜택 감소는 어떻게 메울까 하는 논의도 불발했다.
이런 아쉬움과는 달리 논란에 불을 붙인 홍 지사의 공(功) 또한 특기할 만하다.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파묻혔던 공공의료의 현실을 일깨워, 장기적 논의의 토대를 닦은 게 무엇보다 크다. 한국 공공의료의 문제는 결코 공공병원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학병원 등 전국적으로 200개 가깝다. 보건소와 보건지소도 설치법은 달라도 공공의료 기능을 맡고 있다. 그런데도 공공병원의 기능은 전체의 10% 내외다. 나라가 의료서비스의 가격을 정하는 불완전 경쟁시장에서조차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 밀리고 있다. 민간병원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공병원의 공공의료 기능도 저하돼 가고 있다.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공공보건의료법이 민간병원에도 공공의료를 맡길 수 있게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공공병원 종사자들의 일자리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라면 몰라도, 공공의료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병원시설이라는 유형물에 집착할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공공의료 서비스를 확대할 전달체계의 개선에 치중해야 한다. 민간병원 동원이나 '4대 중증질환 무료화'만이 아니라 '의료 바우처'제도 등 다양한 개선책을 강구할 때가 되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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