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모든 회원국의 은행계좌 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재산은닉 혐의자 명단이 대거 유출된 것을 계기로 탈세 및 세금 회피를 조장하는 역내 은행의 비밀주의를 일소하자는 취지다.
EU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계좌정보 자동교환 법제화를 시도해왔지만 회원국 전원의 합의를 얻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2011년 발효된 예금계좌지침이 최근의 성과이지만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오스트리아와 룩셈부르크가 반대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나라가 잇따라 전향적 입장을 밝히면서 27개 회원국 모두에 적용되는 새 규정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9일 “외국인 계좌에 대한 세부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논의할 준비가 됐다”며 “오스트리아는 그동안 불법행위의 증거가 있을 때만 정보를 제공해왔지만 탈세에 맞서 좀더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국 예금주에 대해서는 비밀주의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룩셈부르크는 더 적극적이다. 룩 프리덴 재무장관은 이날 “탈세와 싸우기 위해 은행의 비밀주의 원칙들을 완화하고 EU 당국에 협조할 준비가 됐다”며 “정부 차원에서 룩셈부르크에 돈을 맡긴 예금자들의 정보를 공유할 계획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알기르다스 세메타 EU 세제담당 집행위원은 “시간은 걸렸지만 룩셈부르크가 자동정보 교환에 동참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날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5개국은 탈세 단속을 강화하기 위한 다자간 정보교환기구 설립에 동의했다. 예금계좌에만 적용되는 현행 정보교환 규정을 금융거래 정보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이들 5개국은 EU 집행위원회에 보낸 서신에서 “새 기구는 세금 회피를 단속하고 근절하는 것을 넘어 포괄적인 다자합의를 통한 법 집행의 전범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다른 회원국들의 참여를 요청했다. AFP통신은 이 기구가 2010년 EU와 미국이 체결한 계좌정보 공유 협약을 모델로 했다고 전했다. 이 협약에 따라 미국인은 EU 회원국에 계좌를 개설할 때 당국에 신고해야 하며 인출액, 잔고 등의 계좌정보가 미국 세무당국에보고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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