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서양 난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꽃이 시들자 화장실 구석에 방치한 화분에서 남천이 살아있었다. 시든 서양 난을 뽑아내고 테라스에 화분을 내다놓았다. 이틀에 한번 꼴로 물을 뿌려주고 푸름을 바라보았다. 지친 몸과 마음에 푸름이 들어와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물뿌리개로 뿌리는 물줄기가 남천에 닿아 죽은 세포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화분 곁에 쭈그리고 앉아 심호흡도 해보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해바라기를 하였다. 잠깐 동안 하는 것이지만, 일주일쯤 어디 가서 푹 쉬고 온 효과가 있었다.
지지난 겨울이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고 자주 폭설이 내리곤 했다. 테라스에 내놓은 남천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봄이 되어서야 테라스에 나가보았다. 남천은 시든 잎을 달고 있었다. 나뭇가지를 꺾어보았는데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 죽은 것이 분명해보였다. 자책이 찾아왔다.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에 글자를 열심히 채워 넣은 것밖에는 한 일이 없었다. 조그만 나무 한 그루 챙기지 못한 나에게 화가 치밀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새싹을 하나씩 나누어주는 것이 된다”고 한 롤랑 바르트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남천에게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날이 따뜻해지면 새순이 돋아날 것이란 기대를 포기한 채 물 뿌리기를 계속했다.
가끔씩 치악산 금대계곡에 쉬러 가곤 한다. 그곳에는 화전민이 버리고 간 움막에서 혼자 사는 시인이 있다. 그는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10년 동안 그곳에서만 살았다. 시가 뭐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고독에서 쾌감 찾기요”. 그가 내어준 방 한 칸에 집필실이란 걸 꾸몄다. 벌써 7~8년이 된 일이다. 나는 거기서 글 한 편 쓰지 못했다. 기껏해야 도시에서 쓴 글을 챙겨가서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도시생활에 길들여져 여유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었다.
지난 봄, 남천에게서 새순이 돋아났다. 얼마가지 않아 예전의 세력을 회복했다. 남천에게 물을 뿌려주는 일이 꼭 내가 쓴 글에 숨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하루에 한번 남천에게 물을 주듯이 내가 쓴 글을 고쳤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피곤해도 그 일만큼은 거르지 않았다. 습관이 되니 그 일을 거르면 하루를 헛산 것 같았다. 남천 곁에 앉아 숨을 쉬었다. 나는 죽은 세포까지 살려내는 글을 쓰고 싶었다.
시는 잠시라도 한눈파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애인이다. 방금까지 같이 있다고 믿었는데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 수 없는 애인 말이다. 남천나무도 그와 다르지 않다. 겨울이 오기 전에 이사하고 이주쯤 구석에 처박아 두었는데 잎이 다 시들었다. 이사한 건물엔 테라스가 없어 남쪽 창가에 화분을 올리고 물을 주었다. 그런데도 아직 살아날 기미가 없다. 책을 내고 글을 돌보지 않은지 한참 되었다. 감각을 찾기 위해선 밧줄을 움켜잡고 사력을 다해 절벽을 올라야 하는데 그때마다 막막하기만 하다. 책을 냈다고 글을 내려놓은 게 잘못이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서는 허허벌판을 헤매야 하고 고독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감과 만날 수 있다.
몇 주째 치악산 금대계곡에 올라갔다. 곰팡이가 슨 벽지를 뜯어내고 페인트칠을 했다. 실리콘을 쏴 바람구멍을 막았다. 장작난로를 피워 습기를 말렸다. 전등과 전축이 전부인 집필실에 들어오니 제법 자세가 잡힌 모양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TV에서 벗어나니 홀가분하다. 노트와 연필과 연필깎이만 남은 책상에 앉는다. 더디고 불편하더라도 당분간은 노트에 연필로 글을 써볼 생각이다. 남천 뿌리에서도 곧 새순이 나올 것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집필실 앞에 옮겨 심을 작정이다.
이윤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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