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 체 게바라가 1967년 10월 볼리비아 정부군에 체포된 다음 날 총살당할 때 낡은 배낭에는 비망록과 녹색 노트가 들어있었다. 비망록의 글은 이듬해 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지만 녹색 노트에 담긴 글은 2007년에야 정체가 밝혀졌다. 그가 평소 좋아했던 파블로 네루다 등 저항시인들의 시 69편을 직접 옮겨 쓴 글이었다. 체 게바라 혁명의 뿌리는 네루다의 시에서 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스무 살에 전 세계 청춘 남녀가 애송하는 연애시의 모델로 손꼽히는 시집 를 발표해 세상에 알려진 네루다가 민중시인으로 거듭난 계기는 스페인 내전이었다. 절친한 동료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 등 많은 사람들이 파시스트들의 준동에 희생당한 것을 보고 공산주의에 투신했다. "성숙한 작가는 인간적 동료의식, 사회의식 없이는 아무런 글도 쓸 수 없다." 네루다는 사후 출간된 자서전 에서 낭만시인에서 저항시인으로의 변신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 1973년 피노체트가 주도한 군사쿠데타로 칠레 민주화가 물거품이 되자 네루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전립선 암을 앓던 그는 쿠데타 열 이틀 후,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2년 뒤였다. 암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군사정부가 발표한 사인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네루다가 숨진 직후 비밀경찰에 체포됐던 비서는 40년간 침묵하다 지난해 입을 열었다. "네루다가 입원한 병원에 정부요원이 찾아와 위에 독극물을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 칠레 공산당의 진상조사 촉구를 정부가 받아들여 그제 유해 발굴 작업이 실시됐다. 유해는 숨지기 직전까지 저술작업에 몰두했던 태평양 연안 해변마을인 이슬라 네그라의 자택 부근 야트막한 언덕에 묻혀있다. 정부는 시신에서 암의 진행 정도와 독소 흔적을 확인해 사인을 밝힐 계획이다. 38년 만에 이뤄진 장준하 선생 유골감식에서 타살 소견이 나왔는데도 정부가 나서지 않는 우리 상황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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