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 남한과 맺은 약속을 잇따라 파기하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시작된 비핵화 기대감은 세 차례의 핵실험으로 물거품이 된 지 오래 됐다. 남북의 유일한 접점으로 남았던 개성공단마저 북측 근로자의 일방적인 철수에 따라 9일 조업이 중단됐다. 이에 의무를 저버리고 합의를 무시하는 북한의 벼랑 끝 시위 전략에 더 이상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지난 20년 동안 국제사회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북한은 도발을 감행해 제재를 받고 냉각기를 거치다가 관계 개선 제스처를 통해 미국 등과 잠정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뒤 보상을 받으면 또 다른 도발을 시도하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영변의 5MW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했을 것으로 의심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북한은 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촉발시켰다. 이에 미국은 94년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관련 시설을 해체하는 대신 경수로 2기와 에너지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북한은 2002년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국 특사에게 플루토늄 방식보다 발전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제네바 합의를 파기하는 수순을 밟았다.
북한은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고 NPT체제에 복귀하는 내용의 9ㆍ19공동성명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으로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2007년 2ㆍ13합의와 10ㆍ3합의를 통해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내용의 진전된 비핵화 약속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과 사용 후 폐연료봉 재처리 선언으로 또다시 맞섰다. 특히 지난 2일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선언하는 등 북한 핵시설의 핵심인 '영변 카드'를 계속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된서리를 맞았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1997년부터 시작된 신포지구의 경수로 건설 사업이 2002년 2차 핵 위기를 거쳐 2006년 중단되면서 비용의 70% 이상을 부담한 한국은 1조3,700억여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북한의 합의 위반에 따른 이자 비용까지 합하면 손실액은 2조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인명을 살상하는 무력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무력 불사용, 경계 불가침 원칙을 천명했지만 1ㆍ2차 연평해전과 천안한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을 자행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미국과의 2ㆍ29합의를 통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기로 약속한 지 두 달 만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며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남북 경제협력 합의도 북한에게는 휴지에 불과했다. 1998년 금강산 관광사업을 시작하며 사업 주체인 현대아산에 건물, 시설 등에 대해 50년 간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08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을 거치면서 긴장감을 높이더니 2010년 자산을 몰수ㆍ동결하고 관리인원을 추방하며 1조원 가량의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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