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 직후의 몇 개월은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다. 최고조에 이른 권력을 밑바탕으로 평소 실현하고자 했던 정책을 마음껏 펼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몰아치는 개혁작업에 온 나라가 숨을 죽이고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데 익숙한 야당도 억지 춘향 격으로 맞장구를 치게 된다. 국민 누구나 "아! 정권이 바뀌었구나"하고 실감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다.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취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강력한 개혁작업을 펼쳤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열흘 만에 군사작전 하듯 하나회를 척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의 금융관행을 송두리째 뒤집는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주도해 갈라진 국력을 결집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권위주의 해체를 내걸고 초기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취임한 지 한 달여, 당선된 날로부터 따지면 넉 달이 된 박근혜 대통령은 너무나 다른 양상이다. 솔직히 말해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가장 활기찬 행보를 해야 할 시기에 무엇을 하는지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그 동안 무슨 정책을 펴고 개혁작업을 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오직 인사 문제로 시끄러웠다는 것밖에는. 사방이 꽉 막힌 경제의 돌파구를 열기는커녕 '창조경제' 개념조차 정리되지 않아 갑론을박하고 있다.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한반도 프로세스'는 채 뚜껑을 열기 전에 북한의 초강수로 형체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그렇다고 반대세력을 껴안거나 다독이려는 대탕평이나 대통합 조치를 보여준 것도 없다.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 이토록 수렁에 빠져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를 잘 안다던 친박 인사들도 "정말 의외다"라며 고개를 흔든다. 기묘한 일이다. 국회의원에다 당 대표를 지냈고 대통령 후보로만도 근 10년을 보냈는데 새삼 어떤 사람인지 다시 봐야 할 상황이 됐으니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박 대통령에게는 이렇다 할 국정경험이 없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청와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고 하나 그걸 국정경험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버지의 고충을 지켜봤을지언정 직접 국정을 집행해봤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그걸 아니라고 우겼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청와대를 나와 사저에서 18년 동안 칩거생활을 했다. 이후 한나라당으로부터 갑작스런 정계입문 제안을 받고 1988년 국회의원이 된 후 내리 5선을 했지만 그의 의정활동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 동안 형성돼온 이미지와 지금의 모습 사이에서 상당수 국민들은 혼란을 느끼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신비주의적 색채를 띠게 된 데는 보수언론의 영향이 지대했다. 선거 유세 때 노상피습을 당한 후 했다는 "대전은요?"라는 한마디가 부풀려진 것처럼 현안에 대해 짧게 촌평하면 상당한 컨텐츠를 포장하고 살을 붙였던 게 언론이다. 국정 현안을 꿰뚫고 있는지 한국사회를 이끌 실력과 비전을 갖추고 있는지 제대로 검증한 적도 없다.
당황하기는 대통령 본인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스스로도 국가 운영이라는 게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을 터이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지연에 잇단 부실 인사검증 논란으로 많이 지쳐 있는데다 중압감도 가중되고 있다"는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 심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 박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대부분 그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기에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가급적 많은 사람의 힘을 빌려야 한다.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구중궁궐에서 나와 선거운동 때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들어야 한다. 아직 임기 초반인 만큼 충분한 기회가 남아있다. 5년을 그냥 이렇게 흘려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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