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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에 천착 어느새 60년 이제야 전집 출간 부끄러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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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에 천착 어느새 60년 이제야 전집 출간 부끄러울 뿐”

입력
2013.04.09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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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는 서구에서도 가장 앞선 문학으로 대우받고 이광수 등 국내 근대문학을 형성한 소설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는 1900년대 초반에 벌써 수십 종의 톨스토이 전집이 출간됐는데 국내에 이제야 나온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9일 톨스토이 전집 첫 권 발간 기자간담회 자리에 참석한 박형규(82) 전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벅찬 모습이었다. 박 교수는 60년간 톨스토이 작품 번역과 연구에 천착해 온 최고 권위자로 국내에 출간된 톨스토이 책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동안 작가정신과 인디북에서 전집을 기획했으나 일부만 발간하고 중단됐다. 이번에 책을 출판한 뿌쉬낀하우스는 러시아 어학원을 겸한 교육문화센터다. 박 교수는 '전쟁과 평화' 등 오래 전 번역 수정에 공을 들였고 '부활'은 신역이라 할 만큼 처음부터 다시 번역했다. '노은사 표도르 꾸지미치의 유고'나 '바실리 신부' 등은 국내 초역이다.

한 사람의 연구자에 의해 원전을 충실히 옮기면서도 작가의 철학을 정확하고 일관성 있게 담아낸 것도 다른 책과 차별되는 점이다. 책은 톨스토이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1978년 모스크바 예술문학출판사가 낸 22권짜리 전집과 1958년 러시아에서 완간된 90권짜리 전집을 참고했다. 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전쟁과 평화', '부활', '유년시절' 등 친숙한 장, 단편소설들과 희곡집 '어둠의 힘', 우화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이 차례로 발간될 예정이다. 와 일기와 편지를 모은 까지 모두 열여덟권이 나온다.

박 교수는 "중학교 때 일본어판으로 된 를 읽고 충격을 받고 문학과 번역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고 밝혔다. "경동고등학교 4학년이던 1947년 때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으로 처음 러시아어를 공부했습니다. 단독정부 수립, 38선 분할 등 중요한 한국의 앞날을 미군정이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열강이었던 러시아와의 관계를 위해 외교관이 되려고 러시아어를 배웠는데, 대학시절 러시아 작품들을 읽어나가며 톨스토이 문학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 노어과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변변한 교수진도 갖추지 못했고, 일본군으로 복무하다가 러시아에 잡혀 몇 개월 포로 생활을 했던 이들이 러시아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박 교수는 한국 번역 1세대로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제자들에게도 한 작가를 공부할 생각이면 30대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해왔습니다. 안타까운 건 현재 톨스토이 연구자가 없으니 제 책을 끝으로 아마 몇십년 간 개인의 힘으로 전집을 내는 게 불가능해졌다는 겁니다."

박 교수는 "톨스토이의 저작은 인간생활의 착취구조와 제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억압당하는 민중을 옹호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러시아정부의 푸쉬킨 메달과 함께 러시아 우호 훈장을 받은 바 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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