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고귀함을 살려내 죽음의 질을, 인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 병원을 꼭 지어야 했습니다. 우리의 죽음문화가 인스턴트 식품 같이 변질되는 것 같거든요.”
불교계 최초의 완화의료(호스피스) 전문병원인 ‘자재(自在)병원’의 준공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능행(53) 스님은 9일 “조금 더 존엄한 죽음의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울산 울주군 상북면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짓고 있는 자재병원은 출가한 뒤 30대 초반부터 부산의료원 행려병동, 소록도와 충북 음성 꽃동네 등에서 봉사해온 능행 스님의 20여년에 걸친 돌봄 수행의 결실이다.
1980년대 후반 불교봉사단체 회원 15명과 함께 수행과 돌봄을 해온 스님이 호스피스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97년 천주교 호스피스 시설에서 한 비구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였다. “꼭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 달라”는 그 스님의 마지막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던 능행 스님은 2년여 뒤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15병상의 호스피스 시설을 열었고, 호스피스 전문인력 양성도 시작했다.
자재병원은 본격적인 호스피스 병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스님이 2002년 건립모금을 시작해 돈이 생기는 대로 땅을 사고 공사를 시작해 짓고 있다. 108병상 규모로 1층에는 호스피스와 희귀난치성 불치병 병동, 2층은 암 등 중증환자 재활병동, 3층 승가요양 전문병동이 들어선다. 이달 말부터 환자를 받아 돌보며 정식 개원은 9월 말로 계획하고 있다.
능행 스님은 자재병원 건립을 “어느 할아버지의 50원 모금으로 시작했다”며 “그 동안 살던 집을 팔아 후원해주시는 노부부 등의 도움으로 여러 차례 고비를 넘겨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7,000명 정도의 후원자가 있지만 이 숫자가 3만 명 수준으로 늘어나야 큰 어려움 없이 운영할 토대가 만들어진다”며 “매달 200만원 정도의 환자 간병비 부담을 이 같은 ‘품앗이 문화’로 덜어가겠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자재병원을 비롯해 자신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정토마을정토사관자재회 등의 활동을 “서로의 공존을 위해 많이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누는 공존의 과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지 않으면 사회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자재’(觀自在)에서 온 ‘자재’의 의미를 스님은 “‘내가 잘 살아야 된다’는 ‘셀프 힐링’의 개념”으로 풀이했다. “결국은 아픈 이 스스로가 이겨내는 것이고 우리는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일 뿐인 거죠.”
문성현(성신여대 영문 4년) 인턴기자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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