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책상 뒤에 앉아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추리소설을 한 편 읽다가 이 문장에 걸려 흐름이 끊겼다. 책상 뒤. 책상 뒤라. 자주 접하는 표현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만 나오면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못내 불편해진다.
어떤 장면인지는 머릿속에 그려진다. 개인사무실을 떠올리면 된다. 책상 위에는 명패가 있겠지. 방문자는 책상을 사이에 두고 책상에 앉아 있는 주인과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방문자의 관점에서, 방의 주인은 분명 '책상 뒤'에 있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 어떻게 책상 뒤에 앉을 수 있지? '책상 앞에' 앉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아마 내가 책상에 앉아 비교적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책상에 대해서라면, 그 책상의 주인을 기준으로 '책상 앞'이라 해야 되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앞, 뒤, 왼쪽, 오른쪽 같은 단어들은 기준이 달라지면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사진 속에서 맨 왼쪽에 선 사람은 사실은 맨 오른쪽에 선 사람이다. 우리가 마주보고 있다면 나의 왼쪽은 당신의 오른쪽이다. 우리가 나란히 걷는다면 나의 왼쪽에 당신이 있고 당신의 오른쪽에 내가 있다. 그러니 앞뒤좌우를 말하기 위해선 기준을 세워야 한다. 무엇으로? 말하는 나 자신? 내 말 속의 주인공? 아니면 지표가 되는 사물과 친연성이 높은 사람? '책상 뒤'와 '책상 앞'이라는 표현을 두고 나는 오락가락 하는 중이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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