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일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 전원 철수와 사업 잠정 중단을 선언하면서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공단의 존폐에 대해서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남북 경제협력과 평화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2004년 본격 가동 9년 만에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이 근로자 철수 카드로 위협한 적은 있지만 명시적으로 철수한다고 밝히고 잠정 중단을 선언한 것은 처음"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북한이 자신들의 경제적 불이익과 공단 근로자들의 동요를 감수하면서까지 공단 가동 잠정 중단이란 초강수를 둔 것은 이른바 '벼랑 끝 줄타기 시위'로 볼 수 있다.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미국, 한국의 대북 정책을 전환시키고 대미∙대남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결국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보장 받고 경제 지원을 받기 위한 대화와 협상의 수순으로 가기 전에 긴장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이후에 개성공단 통행 제한을 비롯한 잇단 위협 발언 공세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자 초강력 카드를 꺼낸 것으로 분석된다. 북측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4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못된 입질을 계속해 시끄럽게 놀아댄다면 우리 근로자들을 전부 철수시키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국의 언론이나 국제사회가 '개성공단은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란 식으로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했다.
북한의 초강수 조치 배경에 대해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지금 북한 사태와 관련해 외신기자 수백 여명이 서울에 몰려 와 있다"면서 "북으로선 현 단계에서 긴장을 높이기 위한 충격 카드로 개성공단 잠정 중단 선언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이 폐쇄로 갈 것인지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북측이 "존폐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면서 "이후 사태가 어떻게 번지게 되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측이 향후 근로자들을 복귀시키고 통행을 정상화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금 통행을 제한하고 있는 개성공단은 무노동, 무임금 상태여서 북측 근로자 철수라는 게 정치적 의미 외에는 없고 북측이 젖줄을 스스로 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번 조치는 김정은의 내부 권력 기반 공고화와 미국에 대한 시위, 한국의 새 정부 길들이기 등을 노린 것으로 우리 정부가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개성공단이 실제 폐쇄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한이 통행 정상화 조치를 먼저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번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과 해외 투자가 줄게 되고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 정책도 성과를 내기 쉽지 않게 될 것이므로 북측은 이 점을 노리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물밑 접촉이나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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