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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서 첫 크랭크인 꿈이 곧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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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서 첫 크랭크인 꿈이 곧 현실로”

입력
2013.04.08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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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를 그린 영화들이 그동안 흥행을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영화적 재미보다는 고난과 역경만 스크린을 가득 채웠으니까요."

영화감독 곽문완(45)씨는 2006년 개봉된 '국경의 남쪽'과 2008년작 '크로싱'을 가리켜 "상업성은 배제하고 정치적 사명감만 가진 무거운 영화"라고 쓴 소리를 해댔다. 이중 크로싱은 직접 모니터링에 참여한 영화다. 곽씨가 민감한 소재의 탈북자 영화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영화를 위해 8년 전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탈북자이기 때문이다.

개성에서 나고 자라 14세에 평양연극영화대학에 입학해 10년 간 교육을 받은 곽 감독은 어찌 보면 북한 영화 조기교육의 수혜자였다. 조기교육 목적은 당 정책을 충실히 전달하는 영화 제작. 북한에서 영화는 당 정책을 선전하는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시절에는 영화 한편을 만들 때 여덟 번이나 국가 심의를 받기도 했다. 북한사회의 열악함이 드러나는 장면 등은 그대로 가위질을 당했다. 곽 감독은 "영화는 내가 아니라 당 조직이 만드는 것 같았다"며 "심지어 1990년대 연출한 작품에서는 척박한 비포장 도로 위를 주인공이 지나가는 장면을 아스팔트 위로 바꾸라는 명령까지 들었다"고 회상했다.

2005년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남한에 정착했지만 원하는 영화를 바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외교관이었던 부모 덕에 해외영화에 비교적 친숙한 그였지만 자본이나 지인 없이 세계적으로 성장한 한국 영화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무작정 영화계를 기웃거릴 때 영화 '친구'로 유명한 곽경택 감독을 만났다. 마침 탈북자가 주인공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태풍'(2005)이 기획단계였다. 탈북자면서 영화를 잘 아는 그가 시나리오 작업에 합류하며 두 곽 감독 사이에는 각별한 인연이 시작됐다. '곽문완'이란 이름도 실향민인 곽경택 감독이 "북한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삼촌의 이름"이라며 직접 선물했다.

이후 그는 곽경택 감독의 '사랑'(2007) '통증'(2011)과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2009)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며 남한 영화판에 점차 적응해갔다. 그는 "돈을 내고 와 준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영화가 진짜 영화란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2010년 인터넷에서 김태희 닮은꼴로 주목을 받은 캄보디아 북한랭면관 여종업원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 '해당화'(가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또 우연한 기회에 입북하게 된 남한 청소년과 탈북자 청년 사이의 우정을 그린 블랙코미디 '삑사리' 시나리오도 막바지 작업 중이다. 북한사회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두 작품에 자신이 추구하는 영화적 유머와 감동을 녹여낼 것이라는 게 곽 감독의 설명이다. 삑사리는 국내 한 유명 제작사에서 투자를 약속해 올 가을 촬영을 앞두고 있다. 감격스러운 남한에서의 첫 크랭크인 꿈이 곧 실현되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대박을 노리지는 않아도 관객 욕심 없는 감독이 어디 있겠냐"고 웃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이제 당이 아니라 오직 관객을 위해 영화를 만들 일만 남았다. 탈북자 영화감독이 아닌 '영화감독 곽문완'으로 당당히 인정받겠다."

글ㆍ사진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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