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기 진작에 나선 정부와 여당이 기준금리 인하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달(11일)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이 '경제적 판단'보다는 다분히 '정치적 결단'에 좌우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일보는 8일 정치적 압력 변수를 배제한 순수한 현 경제 상황에서의 금리인하 필요성 여부를 학계와 경제연구소 전문가 10명에게 긴급 설문했다. 그 결과 90% 가까운 채권시장의 일방적인 인하 예상과는 달리, 인하와 동결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먼저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답한 전문가는 5명이었다. 이들은 대체로 현 경제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점과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이 금리인하 같은 통화정책과 함께 이뤄져야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한은의 독립성은 존중해야 하지만 지금은 거의 멈춰 선 성장 엔진을 다시 돌리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인하 답변 가운데 유일하게 "0.5%포인트 인하로 일종의 충격요법을 써도 무방한 타이밍"이라고 주장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작년 4분기보다 올 1분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한은의 예상과 달리 최근 지표를 보면 경기가 좋지 않다"고 전제한 뒤, "정부의 추경ㆍ부동산 대책이 제시된 만큼 지난달 동결 상황과는 정책환경도 보조를 맞춰야 하는 쪽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동결을 지지한 쪽(4명)은 지금이 꼭 금리를 내릴 타이밍인지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상태도 아니고 금리인하가 절실할 만큼 경기가 후퇴하는 것도 아니다"(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시중에 이미 돈이 많이 풀린데다 대출금리나 물가 수준도 낮아 금리인하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하준경 한양대 교수)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금리인하 카드도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일단 추경 효과를 보며 아껴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용주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은 "아직 1분기 경기지표가 확인되지 않아 판단하기 이르다"며 유일하게 의견을 보류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금리 입장과 관계없이 그간 한은의 정책대응 실패를 비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최근 경기 상황은 결과적으로 한은의 예측과 판단이 틀렸음을 반증하는데, 한은은 아직도 이를 방치하며 별다른 설명조차 없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교수도 "한은이 시장에 적절한 금리 방향 시그널을 주지 못해 오히려 혼란을 키우는 의사소통 실패의 문제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ㆍ국제금융연구실장은 "내리려면 당장 내리고, 안 내리려면 추후에도 인하는 없다는 확실한 입장을 보여야 경제의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의 금리인하 압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권영준 경희대 교수는 "금리 결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결정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최근 정권이 바뀌면서 한은과 정부의 기존 공조 관계가 흔들리는 듯 보이는데, 한은은 물가안정 등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 안에서 정치보다는 시장에 초점을 두고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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