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의 배임죄 가중처벌 망령이 우리 기업계 경영진을 배회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경영판단의 법리'라는 부적만으로는 결궤를 치기에 역부족이다. 애초부터 효용이 없는, 부실한 방어진 구축이었는지도 모른다.
기업 활동과 관련된 경영진에 대한 판결은 늘 세간의 관심을 받아왔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기업경영에서 파생되는 반사회적인 부산물에 대해 입법적 규제와 사법적 단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상법은 이사 등 경영진에게 선관의무와 충실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런 의무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법적 의무위반의 경영활동 실패에 대해선 민ㆍ형사상의 책임을 묻고 있다.
형사상으로는 통상 배임죄의 성부가 논의되고 있다. 입법자는 형법상의 배임죄를 기본으로 하여 업무상배임죄, 상법상의 특별배임죄, 특경법 제3조에 의한 가중처벌로 법정형을 상향조정하고 있다. 법률규정상으로는 경영진에게 행위주체의 특수성을 근거로 상법상의 특별배임죄가 형법상의 배임죄에 대한 특칙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도 현실은 오히려 배임의 이득금액에 따라 형법상의 배임죄를 가중처벌토록 정하고 있는 특경법 제3조를 적용한다. 형사실무의 이런 현상을 일각에서는 사법권 남용이라고 지탄하는 것이다.
경영활동에 대한 형법의 과잉투입이라는 힐책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형사실무엔 '경영판단의 법리'가 배임죄 성립 배제 사유로 되어 있다. 민사책임의 항변사유로 주창ㆍ발전되어 온 '경영판단의 원칙'이 형사적 가중처벌의 부당성에 대한 면죄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병 주고 약 주는 형사실무의 처방에 대해 기업계 경영진의 불안감, 그리고 처벌의 예측불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배임죄는 다른 사람의 사무를 처리하는 이가 임무에 위배해 재산상 이득을 취하거나, 제3자에게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이다. 대표이사 등이 회사의 사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배임죄로 처벌된다. 형법이론상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배임이요, 할 수 없는 일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도 배임이다. 더욱이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도 본인에게는 배임일 수 있다.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받으려는 창의적 경영진은 할 수 없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넘치는 사회, 할 수 있는 것과 금지된 것이 불분명한 사회가 아니라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는 그런 경제계를 꿈꾸기 마련이다.
형사실무는 경영진의 경영행위에 대한 형법의 과다적용을 지양하여 공소권및 사법권을 남용하지 말고, 헌법이 보장한 대로 경제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는 사회, 공정경쟁을 위한 경제적 민주화가 실현되는 사회가 촉진되도록 법질서 형성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 헌법은 기업가정신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거나 백안시하는 대신에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고 동시에 공정경쟁의 트랙을 제시할 경제의 민주화를 위한 법질서형성을 국가에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학계의 논의와 경제계의 여망을 담아 최근 국회에는 상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상법 제382조 제2항 단서, 제622조 제1항 단서를 신설해 이미 하급심 및 대법원 판례를 통해 인정되고 있는 경영판단의 법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법적 판단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기업인들이 기업의 목적인 이윤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영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이는 경영활동에 대한 과도한 형사책임 부담을 줄여 경영진의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주권자의 작은 배려라 하겠다.
아무튼 경제활동의 자유와 창의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국회의 면책적 입법안은 바람직하다. 경제계에서는 모처럼 마련된 주권자로부터의 '특혜'를 오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경렬 숙명여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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