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하락세가 다시 가팔라졌다. 최근 한 달여 동안 95엔대를 축으로 잠시 숨을 고르던 엔ㆍ달러 환율은 지난 주말 하루 만에 4엔 이상 급등한 뒤, 어제 또 다시 98엔대 후반까지 속등해 단숨에 100엔대를 바라보게 됐다. 엔화의 이번 급락세는 지난 4일 구로다 야스히로 신임 일본은행 총재가 예상을 뛰어넘는 대대적 '양적ㆍ질적 완화정책'을 발표한 데 따른 일시적 격동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엔저의 속도와 폭을 예상보다 급격히 끌고 가고 있는 게 문제다.
아베 정부 출범 이래 엔저 장기화 전망에도 불구하고 추세가 이렇게 격렬해지리라는 예상은 별로 없었다. 지난달 블룸버그서베이 평균 전망치도 연말 기준 94엔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선 금명간 100엔을 넘고, 연내 110엔까지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급격한 엔저로 원ㆍ엔 재정환율 역시 북한 리스크에 따른 원화 약세 요인에도 불구하고 1,200원대 초반에서 최근 1,150원대로 밀린 상태여서 향후 원고ㆍ엔저의 파고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엔저의 파장은 우리 산업에 이미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분기 실적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영업이익률은 전년 동기 대비 47.4% 급증한 반면, 현대차는 1% 증가, 기아차는 15.4% 감소에 그쳤다. 소니 역시 흑자전환 했으나, LG전자 영업이익은 22.5%나 감소했다. 엔저가 우리 기업 실적에 발목을 잡는 상황은 앞으로도 이어져, 삼성증권은 엔ㆍ달러 환율이 110엔까지 상승할 경우, 전자ㆍ자동차ㆍ철강 등 국내 주요 상장사 43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95엔 때와 비교해 2.8%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도저식 엔저 정책에 대한 일본 내외의 비판과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 통화전쟁 우려와 일본의 신(新)버블 가능성에 대한 지적이 많다. 이런 우려와 비판이 엔저 추세를 누그러뜨릴 순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마냥 기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당장 금리인하나 한국형 토빈세 도입 등 선제조치를 검토하는 한편, 현장 중심의 다각적인 기업 지원책도 적극 가동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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