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15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4일 대규모 양적 완화정책을 내놓자 세계경제가 ‘엔저’공포에 휩싸였다. 2분기 내 엔ㆍ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엔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특히 일본기업과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 많은 우리나라는 3년 전의 환율전쟁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8일 엔ㆍ달러 환율이 전 거래일 종가보다 0.7% 오른 달러당 98.50엔(오후3시 기준)을 기록했다. 엔ㆍ달러 환율이 98엔대로 진입한 것은 3년10개월 만에 처음이다. 아베 신조(安倍晉三)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이 강도를 높이면서 엔화가치 하락이 본격적 국면에 진입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도 전 거래일보다 8.30원 오르며 8개월 만에 1,140원선을 넘어섰으나, 엔화 가치 하락폭이 더 커 원·엔 환율은 3.91원 내린 100엔당 1,156.16원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100엔 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전망이다.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원은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2년 내 물가 2% 상승 목표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엔ㆍ달러 환율이 2분기 내 100엔대에 진입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모건스탠리(100∼106엔), 바클레이스(103엔), 스탠다드차타드(102엔), 크레디트스위스(100엔) 등 외국 투자은행(IB)들도 올해 엔화 추가 약세를 내다봤다. 이른바 ‘2차 엔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일본은 2010년 9월 엔고 저지를 위해 2조엔 규모의 엔화를 풀면서 시장에 직접 개입한 전례가 있다.
이런 전망이 현실화하면 우리나라 수출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원고·엔저의 파장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엔ㆍ달러 환율이 100엔으로 상승(원ㆍ달러 환율 1,000원으로 하락) 한다면 우리 기업 중 적자기업 비중이 현재(33.6%) 보다 2배 늘어난 68.8%가 될 것으로 분석했다. 삼성증권도 엔ㆍ달러 환율이 95엔에서 110엔으로 오르면 국내 주요 상장기업 43개사의 총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81%, 2.77%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일본에는 가격으로, 중국에는 품질로 앞서는데 엔저 현상으로 가격 경쟁력이 무너진다면 타격을 입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한다. 중소ㆍ영세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과감한 통화정책과 함께 양적완화를 막기 위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소 경제연구부문장은 “엔저 현상이 심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우리도 금리를 낮추는 등 엔화 약세로 인한 타격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 환율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양적완화에 따른 글로벌 유동성 공급 확대의 폐해를 국제사회에 알리고 과도한 양적완화를 저지하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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