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억원에 팔렸던 아파트가 6억9,000만원까지 떨어졌으니 바닥이죠."
서울 강남구 대치동 공인중개사 정모(56)씨는 7억원 선이 무너진 은마아파트 가격부터 거론했다. 그는 "이제 '바닥'이라는 인식과 새 정부에 대한 기대로 1, 2월 급매물은 소진됐고, 지난달과 비교해 84㎡ 호가가 2,000만~3,000만원 올랐다"고 전했다. 아직 거래가 활발한 것은 아니지만, 집주인들 사이에 막연한 기대가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근 K부동산 유모(44)씨는 "희망적인 조짐이 보인다. 실물경기가 살아나면 바닥을 다졌다는 믿음이 거래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경기 장기 침체와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 등 악재가 겹쳐 어느 지역보다 집값이 많이 떨어졌던 경기 과천시에도 '바닥론'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2월 무려 24개월 만에 매매가격이 상승 반전했고, 한달 3건에 그쳤던 거래실적은 36건으로 튀어 올랐다. 집값 반 토막의 대명사에서 '제2의 강남'을 다시 꿈꾸고 있는 것이다.
공인중개사 김모(58)씨는 "손님 왔으니 물건 보자고 할 때마다 1,000만원씩 올릴 만큼 집주인들의 배짱이 커졌다"며 "예전엔 그저 둘러보러 오는 수준이었다면 최근엔 정말 사려는 사람들이 매수 문의를 많이 한다"고 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 분위기도 비슷하다. 공인중개사 이모(58)씨는 "다른 지역 아파트를 팔고 이쪽으로 오려는 사람들이 주로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문의를 많이 한다"며 "5억원 하던 게 금세 5억2,000만~5억3,000만원으로 뛰고 있다"고 전했다. 오히려 정부의 4ㆍ1 부동산대책이 관망세를 키웠다는 불만도 들린다.
추락하던 집값이 서서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있다. 특히 집값 거품의 대명사로 불리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버블 세븐'의 대표주자들(강남 3구, 목동, 과천)이 조금씩 살아나는 기미다. 그간 소외됐던 경기 남양주시(별내지구)와 고양시(삼송지구) 등 서울 외곽지역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호가 상승, 문의 건수 증가세가 실제 매매가격 상승이나 거래건수 증가로 확연히 이어지진 않지만 분위기만큼은 달라졌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간부는 "집값이 무릎 이하로 내려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보수적인 은행원들마저 요즘 부쩍 집을 사려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심지어 몇 년간 잠잠하던 강남 복부인들이 들썩거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동산시장의 선행지표인 경매시장은 올 들어 활기를 띠고 있다. 경기 분당과 일산의 경매 아파트 평균 낙찰가비율(감정가 대비 낙찰가비율)은 1분기 72.8%에서 이달 들어 9%포인트 가까이(81.5%) 늘었다. 수도권 경매 아파트의 평균 경쟁률은 2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낙찰비율도 소폭 오름세다. 최근까지 얼어붙었던 분양시장도 동탄2신도시를 시작으로 대전, 대구 등 지방으로까지 온기가 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집값 바닥을 얘기한다. 그러나 정책 불확실성 해소와 실물경기 회복이 관건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지금 시장은 바닥을 다지는 중이지만 4ㆍ1 부동산대책의 약발이 얼마나 갈지 아직 판단하기 이르고 실물경기도 좋지 않아 '이제 오를 일만 남았다'고 하기엔 이르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집값은 바닥 쪽에 가깝지만 수준 유지를 하는 L자형 바닥인지, 가격이 오르고 거래가 늘어날 V자형 바닥인지는 부동산대책 효과 등을 감안해 좀더 지켜봐야 한다"며 "무엇보다 2006년 이후 최저인 거래량이 늘어나야 바닥을 찍고 반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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