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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글로벌과 팥소 없는 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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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글로벌과 팥소 없는 찐빵

입력
2013.04.0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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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현대차는 중국에서도 잘 나간다. 중국삼성은 지난해 매출이 750억달러(약 85조원)를 돌파했다. 전년 대비 30% 성장이다. 2008년 308억달러와 비교하면 4년 만에 두 배를 넘어선 것이다. 중국 언론조차 삼성을 배워야 한다고 칭찬한다. 중국에서 외국 기업을 칭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현대차도 눈부시다. 북경현대와 동풍열달기아 그리고 수입 완성차를 합쳐 지난해 139만대를 판매했다. 올해는 150만대 이상 판매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판매량이 11만여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15배로 커지는 것이다.

반면 SK와 LG는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 SK는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지 오래지만 딱히 내세울 실적이 아직 없다. 에너지와 통신 등 안보 직결 분야가 주력인 탓에 다른 나라에서 성과를 내는 게 쉽지 않다지만 그래도 아쉽다. 베이징(北京) 중심가 창안제(長安街)에 한국 손으로 지은 사옥을 갖고 있는 유일한 한국 기업 LG는 중국 투자의 선구자였다. 그러나 창안제 거리에서 10년 넘게 운영하던 광고를 철수할 정도로 최근에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그리고 SK와 LG가 엇갈리는 성과를 내는 이유가 뭘까. 많은 분석과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삼성과 현대차는 한자를 쓰고 SK와 LG는 한자를 쓰지 않는 점을 그 이유 중 하나로 지적하고 싶다. 삼성과 현대를 중국어로 읽으면 '싼싱'(三星)과 '셴다이'(現代)다. 중국인이 거부할 이유가 없는 이름이다. SK와 LG는 영어 알파벳으로 돼있다. 중국식으로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다. 중국에 영어 잘하는 젊은이가 적지 않지만 13억명 이상의 인구 가운데 알파벳을 제대로 발음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베이징의 택시 기사조차 '택시'라고 하면 못 알아 듣는다. 그런 중국인에게 SK와 LG의 명함을 건네면 대체로 난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사업의 성패에는 최고경영자(CEO), 경영전략, 시장환경, 경쟁구도, 정부규제 등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소비자다. 기업의 가치는 기업 스스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욕망을 소비자가 찾아내 충족시켜주는데 있다. 따라서 소비자에게 기업의 이름조차 기억시키지 못한다면 사업이 잘 될 수 없다. 기업 이름에 사업의 성패가 달렸다고 하면 생뚱맞을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소비자를 무시한 것이 사업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이 될 수 있다.

SK나 LG가 알파벳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더 큰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글로벌 기업 애플도 '애플'로 발음하지 않고 '사과'란 뜻의 '핑궈'(苹果)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애플조차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다른 글로벌 기업도 중국에선 중국식 한자 이름으로 영업한다.

우리가 통상 글로벌이라고 말할 때 과연 그 글로벌이 지구 어디를 말하는지 이 참에 다시 생각할 필요도 있다. 우리가 중국 등 한자 문화권을 쏙 뺀 채 서방만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마치 글로벌 전체인 양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세계에서 가장 큰 성장 시장인 중국을 제외한 채 글로벌을 얘기하는 것은 팥소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인식도 바꿔야 할 때다.

최근 콧대 높은 '핑궈'가 중국에서 사과를 했다. 다른 나라들과 다른 차별 서비스로 중국 소비자를 무시했다는 지적에 팀 쿡 애플 CEO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는 "중국 소비자와의 소통에 대해 더 많이 배우겠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유념할 대목이다. '핑궈'를 겨누었던 13억의 분노가 한국 기업으로 향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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