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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무경운·무농약·무비료·무제초 자연농 우리에겐 논밭이 성지이자 종합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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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무경운·무농약·무비료·무제초 자연농 우리에겐 논밭이 성지이자 종합병원입니다”

입력
2013.04.0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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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지구친화적인 농사손 많이 가지만 생산성은 안떨어져 대규모는 힘들고 소규모는 가능땅·풀·벌레와 평화로운 공존● 철학연구소 나와 귀농'현대의 노자' 후쿠오카 책이 계기 학자의 길 접고 무작정 자연농 시작부인 1년 만에 두드러기 고치기도● 화학농 하시는 부모님도 인정지력 회복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어… 그 뒤부턴 풀만 넣어줘도 소출 나와돈벌이는 힘들어 협동조합 활동도

봄이다. 사위는 꽃이 피고 농촌은 감자를 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농사철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찾은 시골에서 만나는 것은 엄청난 비닐쓰레기. 농약이나 공장제 비료를 쓰는 화학농업은 서서히 자연에서 나온 퇴비와 유기농으로 바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비닐멀칭과 비닐하우스로 계절을 잊은 농사가 주종이다. 이런 흐름에 반발하여 일본에서 일찍이 시작된 것이 자연농. 땅을 갈지 않고 땅에서 나는 풀조차 그대로 두며 땅이 가진 자체의 생명력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다. 국내서는 최성현(57)씨가 이 분야의 개척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1914~2008)의 책 (원제 '자연농법')을 1988년에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씨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원이었으나 마사노부의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곧바로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농업을 실천했고 자연과 어울려 사는 법을 일러주는 여러 권의 저서와 번역서를 내며 농사짓는 작가로 이름을 날렸다. 화학농업이 이 땅을 망칠 때 유기농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생산소비자협동조합 한살림을 탄생케 한 장일순(1928~1994)의 사상을 소개하는 도 그가 쓴 책이다. 그러나 그 자신, 5년전 고향에 정착하고 4년이 흐른 작년에야 진짜 자연농으로 자리잡은 듯하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강원도 홍천군 남편 시동리에서 1,000평을 자연농으로 짓는 그를 만났다. 만일 자녀교육과 식구들의 병치레에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만 아니라면 이런 농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지 싶다.

-자연농이란 무엇인가요?

"땅을 갈지 않고 풀과 싸우지 않는 농사입니다. 농사하면 땅을 갈고 풀은 뽑고 비료와 농약을 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잖아요. 화학비료와 화학농약을 쓰면 화학농업이고 유기비료와 유기살충제를 쓰면 유기농업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땅을 사람의 힘으로 움직여서 바꾸려는 것이 농사였습니다. 그런데 자연농은 땅을 그대로 두고 작물을 심어요. 자연농의 4대 원칙이 무경운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예요. 땅을 갈면 가리흙이 끊임없이 유실이 되고 땅속에 있는 자연생물들에 의한 천연의 비료공장이랄까, 그런 자연비옥화가 파괴되거든요. 땅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건강하다, 그래서 지렁이와 벌레들, 수많은 미생물의 힘을 살려서 하는 농업이 자연농업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에서 경작, 다시 말해 땅을 갈면서 생산성이 높아졌잖아요. 생산성은 포기하는 건가요?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아요. 대신 힘은 들지요. 이게 한마디로 말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집집마다 사정이 다른데 지금의 농사라는 것은 엄청난 농자재가 들어가요. 기계와 비료와 약품. 벼농사라고 하면 못자리를 만들 때부터 상토를 사서 뿌려주고 소독약을 사서 볍씨를 소독하고 땅을 갈아야 하잖아요. 그 다음에는 땅에 물을 넣고 평평하게 만들고 이앙기로 모를 심어요. 그게 다 대형기계를 사용해요. 약도 치지. 그 비용이 상당히 들어요. 자연농은 있는 땅 그대로에 물만 붓고 모심기 하면 끝이에요. 대신 사람의 힘은 엄청 들어요. 제가 논을 450평 정도 짓는데 기계로 하면 40분이면 모내기가 끝나는데 우리 부부는 꼬박 1주일이 걸리거든요. 그래서 자연농은 대규모에서는 힘들고 소규모 농사에서 가능해요. 노동력만 있으면 되니까 소규모 농사에서는 남는 게 많아요. 뿐만 아니라 자연농은 그 작업 자체가 좋죠. 기계를 쓰면 새소리고 뭐고 못 들어요. 자연농은 같은 농사라도 지구를 전혀 다르게 경험해요. 우리 부부는 한여름 뙤약볕에도 논에 와요. 일하다 보면 마음 속에 막히고 굽혔던 것이 저도 모르게 뚫려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논밭이 성지(聖地)이자 종합병원이에요."

-실제로 잘 안 아픕니까?

"저보다 자연농 한 경험이 짧은 우리 집사람을 예로 들자면 이 농사를 1년반 짓고 지병이던 두드러기가 사라졌어요. 도시사람이 시골 와서 농사짓고 3대가 살면서 효부상을 받았는데 저 논의 효과에요.(웃음)"

-어떻게 하다가 자연농을 하게 됐어요?

"원래는 학자가 되려고 했어요.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장자철학을 전공해서) 대학원 졸업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철학종교연구실에 있었는데 그건 길이 아니라는 걸 여러 교수들이 삶으로 보여주더라고요. 저도 그다지 전도양양하지 않았고.(웃음) 1988년 동국대 철학과 사무실에 갔다가 교수님을 기다리면서 서가에 꽂혀있는 자료를 보게 됐어요. '현대의 노자'로 불리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오라기의 혁명' 앞부분을 번역한 글이었어요. 독서모임에서 만들었는지 장마다 글씨체가 달랐어요. 읽는데 이게 복음이구나 싶은 게 가슴이 방망이질을 쳐요. 용무를 마치고 대학 벤치에 앉아 2시간 동안 무아지경에 빠졌어요. 그동안 알던 세계가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새로운 것이 내 안에 생겼지요. 지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모두 허상을 붙잡고 고통스럽게 사는구나. 지구가 난데, 나를 가꾸고 건강하게 살면서 그 속에서 세끼 양식을 얻으며 살면 되는 것인데 그게 전 지구와 함께 사는 것인데. 그때 저는 신림9동에서 집을 얻어 외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지낼 때인데 일본인 유학생이 방학 때 마사노부의 원서를 가져와서 그 중 '자연농법'을 그와 함께 번역해냈어요. 그런 삶을 살아야겠다고 연구소를 그만 두고 박달재 아래 빈 집을 얻어 무작정 자연농을 시작했어요."

-어릴 때 농사는 지어봤고요?

"아뇨.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었고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어요. 어머니는 농사를 지었어요. 웬만한 밭작물은 자급자족하는 게 옳다며. 지금도 논농사 밭농사 얼마나 열심히 짓는지 손이 갈퀴에요. 저는 어릴 때 할아버지 곁에서 모를 날라주는 심부름이나 했지요. 우렁이가 엄청 많이 잡혔던 기억이 나요. 중학교까지만 시골서 살았으니까 농사는 잘 몰랐어요."

-자연농은 해보니까 잘 되던가요?

"이미 농약과 비료로 황폐해진 땅에서 그대로 자연농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요. 자연농은 땅을 오래 지성으로 가꿔서 건강함을 되찾은 다음에야 가능하거든요. 더구나 저는 마사노부 책만 교과서로 믿었는데 책 한 권으로 모든 게 되지 않잖아요. 한 시간은 걸어나가야 버스정류장이 나오는 깊은 산 속이니 의논할 곳도 없고 되는 건 하나도 없고 좌충우돌했어요. 친구들에게 폼 나게 시골 간다고 하고 왔지만 어디부터 해야 될지 모르겠는 거예요. 백기를 들고 도시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정말 진지하고 길게 했지요."

-그런데 왜 안 돌아갔어요?

"창피하기도 하고 체험도 강렬했으니까요."

-고향으로 돌아온 건 그런 영향도 있나요?

"아니요. 그곳이 개발이 되고 개인사정도 있고 해서 5년 전에 고향에 자리잡자 생각했어요. 농사 반대하던 부모님이 땅도 내주시고."

-고향에서 자연농은 쉬웠어요?

"남한테 부치던 땅을 찾았는데 할아버지 때만 해도 우렁이가 그렇게 많던 땅이 농약과 비료로 황폐해진 건 똑같았어요. 그 잘 자라는 들깨도 안되더라고요. 그게 바로 한국 사회에서 불과 30~40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에요. 첫 해에는 유기농 퇴비를 엄청 많이 넣었어요. 집에 대규모 퇴비장을 만들어서 음식물 쓰레기 나오는 것도 썩히고 퇴비도 샀어요. 이듬해부터는 풀만 넣을 뿐 다른 건 안 넣는데도 드디어 작년에 논에서 쌀이 여섯가마쯤 나왔어요."

-정말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마늘이든 벼든 사람이 뽑아 먹는 양만큼 풀을 넣어줘서 땅의 건강함을 회복시키는 일을 해야지요. 벼를 털면 짚은 당연히 논으로 돌려주고요. 밭작물 사이에 호밀도 심어요. 호밀이 높게 자라니까 토양을 덮어주고 뿌리가 깊어서 지력을 회복해줘요. 호밀은 빻아서 과자를 구워주면 딸이 아주 좋아해요. 논이나 밭에서 풀은 뽑거나 베거나 그 자리에 그대로 덮어주고요. 길 가다가 풀 한포기라도 버려져 있으면 주머니에 넣어와서 밭에다 넣어요. 소똥도 주워다 넣고. 그러니까 동네에서 식물 찌꺼기를 치울 일이 있으면 저를 불러요. 대부분 농부들은 풀이 나오면 그걸 버려요. 그리고 비료로 채우는데 풀이야말로 하늘이 준 가장 건강한 비료예요."

-어머님도 자연농을 하시나요?

"농약, 비료 다 써요. 처음에는 속에서 불이 났어요. 그런데 서로 간섭하지 말자, 화가 나도 밖으로 내지 말자, 그렇게 마음 먹었어요. 어머님은 마당에 풀 한 포기도 그냥 두지 못 하는 사람인데 제 농사가 또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런데 작년에 제가 지은 마늘농사를 보더니 승복하시는 듯해요. 보통 마늘농사를 지으면 땅 소독부터 영양제 비닐멀칭에 끊임 없는 물주기까지 정말 손이 많이 가요. 그런데 저는 풀을 덮어서 벌거숭이 땅만 안 만들어요. 그러면 풀이 더 안 올라와서 김매기 할 것도 거의 없어요. 그렇게 해서 거두기만 했는데 저희 마늘이 상등품의 하(下) 정도로는 굵게 나왔거든요. 부모님이 제가 이렇게 농사짓는 거는 싫어해도 맛은 전세계에서 자기 아들이 짓는 농사가 최고라는 걸 입으로는 아세요. 밥은 꼭 우리 쌀을 드세요.(웃음)"

-자연농법을 먼저 시작한 일본을 보면 어떤 경지던가요?

"마사노부는 밭이 없었어요. 산에서 작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채소고 잡곡이고 씨를 뿌려놓고 저절로 살아나는 것만 먹었어요. 그러니까 한가하고 평안하지요. 제가 하는 것은 가와구치 요시가츠가 하는 방식인데요. 濚窪嗤?땅을 갈지는 않아요.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1주일에 하루를 견학의 날로 두었어요. 저도 오래 전에 보리꽃 피기 직전에 가봤어요. 곤충들이 굉장히 많고 아, 모든 생명이 이렇게 지구에 난 것을 찬탄하며 살겠구나 하는 감격스런 느낌을 줘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낯선 사람들끼리 부둥켜 안기도 하고 땅에 입을 맞추면서 '여기가 천국이다'하고 외치더라고요. 보통 농업이라면 풀과 싸우고 벌레하고 싸우고, 싸움이거든요. "

-여기서도 그런 경험을 해보셨어요?

"작년 여름에 김을 매는데 고추잠자리가 마치 분봉할 때 벌떼처럼 우리 두 사람 주변에 가득 차는 거예요. 원래 그맘때면 쏘거나 무는 벌레들이 많아요. 골을 타고 가면 벌레들이 구름처럼 일어나는데 그걸 먹으려고 고추잠자리들이 떼로 몰려 온 거지요. 덕분에 벌레들에 물리지도 않고. 한국에는 요즘 제비 오는 곳이 드물어요. 근데 2년째 가을이면 50~60마리가 여기를 잠깐 머물다 가요."

-자연농으로 벌이는 되나요?

"먹고 사는 건 되지만 돈을 벌기는 힘들어요. 저는 책도 쓰고 번역도 하니까. 한살림 공동체(생산자 공동작목반)를 하는데 소득은 거기서 나와요. 한살림은 농민들이 생산량을 정하면 미리 가격을 정해주고 그걸 보장해줘요. 그래서 1년 소득을 계획도 세울 수 있고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한살림을 한 것은 소득 때문은 아니고요. 고향에 오기까지 저는 혼자서 어쩌면 종교적인 이유로 자연농을 해왔잖아요. 고금의 선지식이 '남을 나보다 위해야 나도 더 잘 산다' 그러지만 그게 머리로는 알아도 현실 속에서는 안돼요. 천국과 지옥, 평화와 불화를 만드는 게 다 자기인데 혼자 살면 그런 게 안 보이거든요. 바람하고 물하고 나무하고만 상대하니까 제가 얼마나 사나운 놈인지 안보이잖아요. 여러 사람 속에 섞이면 그제야 주변머리 없는 것도 싸가지 없는 것도 보이고 연금(鍊金)이 되는 거지요. 그래서 고향으로 오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지역 일을 하고 싶어서 한살림 공동체를 만들었어요. 신대리 시동리 10가구가 유기농 축산의 소똥을 받아다 유기농 퇴비도 같이 만들었어요."

-유기농에서 자연농으로 가라, 설득은 안 하나요?

"논과 밭이 설득할 수 있게 될 때 방법을 알리는 책을 쓰려고요. 논과 밭이 설득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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