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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숭례문… 사각 틀에 담겨 해체된 근현대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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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숭례문… 사각 틀에 담겨 해체된 근현대의 기억

입력
2013.04.0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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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비슷한 말이지만,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공간이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곳이라면, 장소는 개인의 기억과 흔적이 남아 있는 특정한 곳이다. 혹자는 근대 이후 장소가 거의 모두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기가 발붙인 곳에 애틋한 기억을 지니고 산다.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 불타버린 숭례문, 박물관이 된 서대문형무소…. 이 장소들을 떠올릴 때, 우리 가슴에는 치욕과 향수가 뒤섞인다. 그것은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기억, 이 땅의 사람들과 그 밖의 타자들을 구분 짓는 감정이다.

28일까지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장화진(64) 이화여대 교수의 '공간의 굴절과 기억'전은 이렇게 사라졌거나, 사라질 건물들을 재현한 전시다. 특별한 감정이 담긴 장소들이 캔버스 위에 단정하게 재현되면서 중립적 공간으로 굴절된다. 장 교수는 2000년대 초반 문, 액자, 창문 시리즈를 선보였고, 2004년 개인전 이후 줄곧 서대문형무소, 조선총독부, 강화도 성공회성당 등 근현대 건축물을 그렸다.

2일 전시장에서 만난 장 교수는 "틀(프레임)은 일상과 미술의 기준을 규정하고 또 파괴한다. 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액자, 창문을 그렸고, 건축까지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일제강점기 건물들을 찾아 다녔다"면서 "그 건물들이 지어지고, 허물어지면서 개인과 사회의 기억이 해체되고 재구축되는 과정을 재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캔버스가 바닥에 카펫처럼 깔려있다. 최근작 '모던 테이스트'다. 장 교수는 "1930년대 지은 이화여대 본관의 바닥 타일을 실물크기로 그린 것"이라며 "우리의 근현대 시간을 담은 소재를 찾다가,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 일부분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2~3층 전시장에는 서대문형무소 벽과 창문을 그린 대형 회화, 조선총독부 건물과 광화문 광장을 형상화한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1996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전경을 투명 필름으로 제작해 여러 장 겹쳐 만든 '조선총독부 프로젝트'(2004), 구한말 촬영된 원판 사진 필름을 겹쳐 만든 '광화문 프로젝트'(2000)는 근현대를 통과하며 사라진 이 땅의 장소들을 유령처럼 부활시킨다. 붉은 벽돌건물인 서대문형무소와 강화도 성공회성당을 그린 작품은 색과 형태의 반복과 변형이 돋보인다. 가로 세로 0.8×1.3m 크기의 캔버스 10개에 각양각색 유리창을 그린 '윈도 시리즈'(2010), 빈 방 구석을 그린 '빈 공간 시리즈'(2012)는 프랑스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명료한 형태 속에 추상적 면모가 내비친다.

장 교수는 "대학시절 사진작가 임응식 선생이 고궁을 반복해 촬영하면서 시간성을 강조하셨다.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훼손되기 때문에 계속 카메라에 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그런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기회가 된다면 계속 이런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02)720-5114.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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