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도박 마약 성범죄 등 흔한 말로 물의를 일으켰을 때, 연예인들은 고개를 숙이며 자숙하겠다고 말한다. 자숙은 법적 심판이나 처벌과 함께, 혹은 그와 무관하게, 그들이 스스로 감수하는 일종의 '사회적 처벌'이다. '자숙한' 연예인들은 어느 순간 활동을 재개하는데 그 시점은 다양한 변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거기에는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대중의 정서와 그에 기대 굴러가는 연예산업의 현실적 계산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들은 왜 자숙하는가
자숙(自肅)의 사전적 의미는 행동을 스스로 삼가 조심함이다. 연예인들은 자숙을 택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생계수단인 활동을 중단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벌금형을 내리는 것과 같다"며 "연예인이 문제를 일으키면 대중은 실망과 분노를 느끼고 보상받길 원하는데, 자숙은 법 논리와 대중 정서 사이의 괴리를 채우기 위한 효과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자숙이 대중의 '정서법'에 따른 처벌이라는 것이다.
물론 연예인의 자숙이 자의적 선택인 것만은 아니다. 한 연예기획사 매니저는 "연예인은 이미지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안 좋은 사건이 터지면 활동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며 "본인 의지도 있겠지만 방송사에서 하차 논의가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자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도 "당장 나오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시장논리라는 것이다.
배신감과 수습속도가 기간 좌우
자숙은 형량 없는 처벌이다. 물론 법적 형량이 무거울수록 자숙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은 존재한다. 음주운전보다는 성범죄가, 대마초 흡연보다는 필로폰 투약이 복귀하기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런 논리로는 고무줄 같은 자숙기간을 설명할 수 없다. 2001년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기소된 연기자 황수정씨는 5년여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한 반면 2010년 같은 혐의로 기소된 연기자 김성민씨는 지난해 JTBC 드라마를 통해 방송에 복귀했다. 또 음주운전 등에 연루된 연예인들은 자숙기간을 갖지 않거나 몇 달 만에 복귀하는데, 2005년 음주운전 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아이돌그룹 '클릭비' 출신 김상혁씨는 3년 7개월간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그 차이를 배신감의 차이로 설명했다. 배신감이 클수록 복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심희철 동아방송예술대 엔터테인먼트경영학과 교수는 "대중은 물의를 빚은 사건과 연예인의 평소 이미지를 결합해 반응한다"며 "연예인의 이미지와 사건의 성격 간 차이가 클수록 충격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청순한 분위기로 인기를 모은 황수정씨의 마약 사건을 대표적 예로 꼽았다.
또 사건이 터졌을 때 얼마나 신속하게 수습하는지도 자숙기간에 영향을 미친다. 대중문화평론가 정석희씨는 "대중은 기만 당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기 때문에 잘못했을 때는 빨리 솔직하게 사죄하고 자숙하는 게 좋다"며 "어떻게 떠나는지가 언제 돌아올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금 탈루 논란이 일자 바로 사과하고 1년간 자숙기간을 가진 강호동씨는 대중의 마음을 잘 읽은 경우라고 평가했다. 반면 사고 당시 음주운전 혐의를 부인한 김상혁씨나 병역 기피 혐의로 1년 넘게 재판을 받은 가수 MC몽처럼 논란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대중이 그 게임에 개입하게 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기획사와 방송사의 복귀 탐색전
연예인에게 자숙기간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은 "자숙을 할 때 언제 복귀 타이밍을 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미리 계획을 짜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자숙 연예인들은 노출을 삼가며 대중의 머릿속에서 물의를 빚은 사건이 잊히기를 기다린다.
복귀 시기를 결정하는 미묘한 저울질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까. 한 연예기획사 매니저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방송사나 캐스팅을 하는 쪽에서 먼저 슬슬 이름이 거론된다"며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곳에서 캐스팅 제의가 오면 작품을 고르는 등 복귀를 준비한다"고 말했다.
기획사도 적당한 시점에 해당 연예인을 봉사활동 등 좋은 일에 참여시키고 언론에 적극 홍보한다. 이렇게 간간이 나오는 기사에 대한 댓글 등 대중의 반응을 방송사 관계자들은 주시한다. 결국 기획사-언론-방송사가 돌고 돌면서 끊임없이 대중의 정서를 탐색하는 것이다. tvN의 한 예능 PD는 "활동을 중단한 연예인을 섭외하고 싶으면 관련 기사와 인터넷 반응을 주의 깊게 본다"며 "부정적인 글이 다수면 출연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생활과 범법행위 분리 경향
연예계 관계자들은 안타까운 자숙 사례로 사생활 때문에 활동을 중단한 경우를 들었다. 사생활 영상 유출로 피해를 입었던 오현경씨와 백지영씨가 대표적이다. 정석희씨는 "비디오를 유출시키고 돌려본 사람들이 잘못한 건데 피해자가 활동을 못하는 건 불합리하다. 동성애자임을 밝힌 홍석천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인기가 좀 떨어질 수는 있지만 아예 활동을 못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예인이 사생활 때문에 활동에 타격을 받는 일은 점차 줄고 있다. 오현경씨는 안방극장에 복귀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백지영씨는 3년 만에 새 앨범을 내고 활동을 재개했다. 또 과거에는 연예인이 이혼만 해도 활동을 중단해야 했지만, 2011년 가수 서태지씨와 이혼 소송으로 주목을 받은 이지아씨는 별다른 자숙기간 없이 MBC 드라마에 출연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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