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두고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숙기간이 아닌 '자숙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표현했다. 아이돌그룹 '클릭비' 출신의 김상혁(30)씨 얘기다. 그는 잘 나가는 연예인이었다. 여느 아이돌과는 다른, 스스럼없는 모습으로 인기를 모으며 그는 라디오 DJ, 연기자, 방송 진행자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2005년 4월 터진 뺑소니 사건과 음주운전 논란으로 김상혁씨 모든 활동을 접고 자숙해야 했다. 사건 자체보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해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그는 "그때는 너무 어리고 겁이 나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랐다"고, "음주단속에 걸릴 정도는 아니었다는 말을 하려다 표현을 이상하게 해버린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몇 차례 복귀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은 그는 2011년 5월 조용히 훈련소에 입소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인 그를 지난주 소속 기관의 양해를 얻어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다른 공익근무요원들과 똑같죠. 아침 8시 50분까지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일하고. 퇴근하면 영화나 소설책을 많이 봐요. 최근에는 영화 '신세계'를 재밌게 봤어요. 소집해제가 얼마 안 남아 연예계 분들을 만나서 앞으로 활동계획에 대해 상의도 하고. 주말에는 부산에 가서 친형이 장사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고. 분식집인데 매장에서 서빙도 하고 주문이 들어오면 배달도 가요"
분식집에서 일하면 알아보는 사람은 없나
"서울이 아니고 부산에서 보니까 '어' 하면서 긴가민가하죠. 오히려 좀 나이가 있는 분들이 알아봐 주더라고요. 나이 어린 학생들보다는"
공익을 하니 달라진 점은?
"뭐라도 하고 있다는 안정감이 생겼죠. 뭐 하나 정리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병역을 마치는 거니까 '내가 뭐라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죠. 집안의 한 아들로서 빨리 두 발로 서서 잘 지내고 싶고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죠. 그 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는데 묶여있으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역복무 하시는 분들은 더 하겠지만"
왜 비공개로 입소했나
"(복귀하려고) 용 써보다가 간 건데 모르겠어요. 알릴 만하게 대단한 활동을 하는 상황도 아니었고. 약간은 안돼서 간다는 느낌도 싫었던 것 같아요"
김상혁씨는 사건 후 2년여 만에 케이블 채널에 출연하는 등 복귀를 시도했다. 하지만 꾸준한 활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방송 출연이 예정됐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일도 겪어야 했다.
복귀가 쉽지 않았는데
"2007년에 SBS '스타킹'에 섭외 됐다가 방송 하룬가 이틀 전에 취소 됐죠. 처음에는 지상파에 오랜만에 나간다는 게 부담스럽고 겁이 나서 '안 나가면 안 될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막상 취소되니까 너무 정신적으로 큰 상처가 오더라고요. 나중에 MBC '환상의 짝꿍'도 같은 경우죠. 출연이 취소됐는데 처음보다는 충격이 덜했어요. 겸허하게 받아들였다고 해야 하나 '이럴 줄 알았지, 아직 준비가 안됐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1대 100'에 100명 중 한 명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케이블에 저랑 비슷한 말하자면 재활이 필요한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가 있었어요. 예능감을 찾는다거나 그런 게 방송 콘셉트였는데 지상파를 한번 나가보자는 취지로 KBS '1대 100'에 나갔죠. 근데 어렵더라고요. 세 번째 문제에서 바로 떨어졌어요. 말할 기회를 줘서 '오랜만에 지상파에 나왔으니까 열심히 해서 오랫동안 카메라에 비치고 싶었는데 여기까지인가 봐요'라고 말을 하는 순간 자리에 불이 탁 꺼지더라고요. 탈락하면 불이 꺼지는 프로라 재미있는 상황이긴 한데, 혼자 괜히 뭔가 크게 와 닿는 거예요. '아 정말 끝인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슷한 사건을 일으킨 다른 연예인보다 자숙기간이 긴데
"처음에는 저랑 비슷한 경우인데 방송에 나오면 '나도 무지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약간 질투도 났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저분들도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사건 전에는 물의를 일으키는 동료를 보면 '아 어떡하지' 하면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 그 마음을 아니까."
어떻게 생각이 바뀌게 됐나
"일을 못하는 기간에 집안에서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점점 안 좋은 일이 겹치고 쌓이더라고요. 사람이 하나 삐뚤어지면 다 삐뚤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서른이 된 그는 8년 전 사건을 돌아보며 "그때는 너무 어렸다. 중학교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연예계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자동차 사고 후 도주한 그는 11시간 만에 경찰에 출두했다. 음주측정 결과 알코올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 발생 전 술자리에 있었던 것이 밝혀지고 이에 대해 김씨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그는 사건 5개월 만에 사고 후 도주 혐의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는데 음주운전은 범죄사실에서 제외됐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말로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당시 기자회견을 할 때는 머리에 쥐가 나고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꿈 같았어요. 제가 그때 하고 싶었던 얘기는 '술을 마셨는데 많이 안 마셔서 음주측정에 안 걸릴 정도'라는 거였는데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알코올을 조금이라도 섭취하면 음주운전인데. 제가 일찍 가서 (음주측정을) 했으면 나왔을지 안 나왔을지 정확히 자신은 못하겠어요. 그 때는 겁이 많이 나서 하나라도 혐의를 약화시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건 후 주위 사람들 반응은
"정말 가까운 사람들은 비슷한 거 같아요. 가족이나 클릭비 멤버들. 그리고 계속 기다려주시는 팬분들. 다른 동료들은 저를 싫어한다거나 돌아선다기보다 금방 제가 안중에서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절친 같은 동료 이런 느낌이었는데. 누구 탓을 할 순 없죠. 떨어진 건 전데. 만나면 좋겠지만 동네에서 이사가면 멀어지듯이 전학가면 멀어지듯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따금 전화해서 안부 물어주는 분들도 있는데 관심 자체가 고맙죠."
한동안 외출을 못했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저를 죽이려는 줄 알았어요. 거의 1년 동안 미니홈피에 가족까지 비하하면서 도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나치다 만나면 사람들이 나한테 어떤 얘기를 할까 무서워서 밖에 나가는 것도 싫었죠. 근데 막상 나가니까 기운 내라거나 앞으로 잘하라는 얘기를 해주시는 분이 많더라고요. 택시기사 분들이나 지나가는 아주머니나 식당 옆에 앉은 처음 보는 형들이나 한마디씩 해주는 게 힘이 되더라고요."
연예인이라 사소한 잘못을 해도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어떻게 보면 안 가혹하다고는 할 수 없죠. 생계로 연결이 되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 걸 감수할 만큼 충분히 매력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추억이 있지만 저는 혼자만 추억을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팬들도 활동할 때 추억을 얘기해요. 추억을 여러 사람과 같이 갖고 있다는 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큰 복인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은
"진짜 얼마 안 남았어요. 5월 중순에 나가니까. 고맙게도 저한테 관심을 가져주시는 연예계 관계자 분들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후회 안 하게 정말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요. 뭘 해야겠다고 아직 정한 것은 없지만 예전처럼 정신 없이 일해보고 싶어요. 잘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원 없이 일을 하고 싶죠."
그에게 말을 조리 있게 한다고 하자 "집중해서 들어주니까 그런 것"이라면서도 "제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면 일리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달 앞으로 다가온 소집해제 후 계획을 얘기하면서는 들뜬 기색을 보였다. "좋은 계획을 짜서 빨리, 빨리보다는 좋게, 진정성 있게 빨리 복귀하고 싶어요"
류호성기자 rhs@hk.co.kr
김현정 인턴기자(서울여대 영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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